새벽녘, 거미줄을 찢으며 갓을 쓴 낭인이 지나간다.
황혼이 드리우면, 그는 술을 마신 듯 얼굴을 붉히며 돌아온단다.
‘갓을 쓴 낭인’의 존재는 황혼이 되어야만 드러난다. 낮 동안은 ‘갓을 쓴 낭인’이다. 낭인은 우리나라에는 없던 말로 일본 역사의 부속물이다. ‘낭인’이란 말의 유래는 중세 일본 남북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무라이 중에서 주군 없이 떠도는 하급 무사를 일컬었으며, 에도시대 중기 이후 전쟁이 드물어지자 더 이상 정식 무사로서 전쟁에 참전하지 못해 생계가 불안해졌다. 주로 청부업이나 약탈 등을 일삼아 떠돌며 일본 사회의 문제가 되었다. 박경리의 토지(7권 315페이지)에는 ‘조선을 거쳐 만주 대륙을 횡행하며 곡예와 음모를 일삼는 무법자’로 나온다. 일간에 우리나라의 방랑자와 유사한 의미로 통용되지만 본 의미는 현격히 다르다.
황보준서가 만난 ‘낭인’은 악명 높은 의미의 낭인이 아니다. ‘얼굴을 붉히’는 것은 마음의 변화를 의미한다. 황보준서의 발견이다. 가로등의 존재는 불을 밝힐 때 증명된다는 이야기를 신선한 2행의 문장으로 엮었다. 하나의 사물에서 뜻밖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좋다.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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