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40)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40)
  • 경남일보
  • 승인 2023.06.1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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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중후한 목소리 다지는 김정희와 시조문학관(2)
김정희 시조시인은 출생이 일본 오사카(大阪)이다. 일단 부모가 일본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시인은 자라기는 마산, 고등학교는 마산여고를 나왔고 시집은 진주로 와 살았다. 숙명여대 국문과를 수료했고 부군은 경남과기대(현 경상국립대) 전신 진주산업대 총장을 지낸 고 김상철 교수이다. 그러나 시인의 아버지는 고향이 충남 금산군 진산면으로 시대의 흐름에서 굴곡진 파도를 탔던 분이었다.

“내 아버님 밟으시던 충청도 첩첩 산길/ 산이 산을 업고 반가이 마중 나오고/ 먼 발치 구름도 모여 이마에 맞대이네

인삼골 깊은 골에 숨어 핀 도라지꽃/ 흰 옷깃 조선(祖先)의 향이 골에 자욱히 어렸는데/ 동학(東學)의 추운 살붙이 볼 부비며 살고녀” -‘산길, 도라지꽃’ 전문

아버지를 ‘산골 도라지꽃’이라 불렀다. 왜 인삼골에 숨어 핀 도라지꽃일까? 동학의 끝으로 사는 세상살이는 역사의 능선을 타던 지사들의 뒤안길이다. 아버지는 본래 이름이 ‘김길수’ 선생인데 파고 속에서 ‘김목수’로 변성명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돌아오신 첩첩 산길의 도라지꽃, 흰빛 겨레의 숨소리 들리는 자리 앉아 계신다는 것이다.

김길수 선생은 유년에 서당을 다녔는데 그 유명한 야당 당수 유진산 선생과 동문수학한 1907년생이다. 유진산 당수는 그 시대에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보다는 한 발 앞서는 정치 지도자였다. 아마도 김길수 선생은 더 많은 언덕을 넘어다니는 이 나라 이름 없는 도라지 꽃으로 함초롬한 이슬밭 주인이었을 것이다.

김정희 시조시인의 작품 중에서 특히 가족사를 포함하고 있는 이 작품이 귀하게 여겨진다. 다음 시조는 특히 노령의 시학이라 할 만큼의 연조를 느끼는 작품이다

“초록빛 음표들이/ 햇살을 물어나른다// 푸른 숲 산과 들에/ 메아리치던 노래// 불다 간 바람이듯이/ 귓가에 머무는데// 수의(壽衣)를 갈아 입고/ 잠자리에 드는 밤// 아름다운 이 세상/ 하직할 듯 했건만// 날 새면 들리는 새 소리/ 또 하루가 밝아온다”-‘새 소리’전문

이 시조는 노달, 노숙의 경지를 보인다. 젊은 사람들 재기도 중요하지만 인생이 깊숙이 담겨 있는 구절이 생의 언덕빼기에 오른 숨차지만 다 아는 듯한 체현이라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한다. “壽衣를 갈아입고 잠자리에 드는 밤” 같은 대목이 새소리로 깨어나고 있는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망월동 백일홍’은 돌아가신 아버지 혼백 또는 숨결이 젖어오는 느낌이다.

“무쇠를 녹이리라/ 무쇠를 녹이리라/ 망월동 무덤가를 달구는 저 불가마/ 장대비 백날을 쏟아도 불길은 끌 수 없고// 천둥 번개 내리치던/ 아수라 지옥의 날/ 사태진 언덕 위에 불기둥으로 솟아/ 허공에 빛을 뿌리고 몸을 사룬 혼백들// 내 눈물 땅에 묻고/ 돌아서는 이 길목/ 은은히 들려오는 우렁찬 저 종소리/ 에밀레 종 치는 나무여 네 울음에 발이 묶인다”

저 5·18 광주의 불길이 아직 백일홍에서 붙어오르고 있다. 무쇠를 녹이는 불가마로 백일홍을 비유하고 있다. 장대비 백날로 내리쳐도 불길을 끌 수가 없다는 시다. 정신이 꼿꼿하고 함성이 아직 그 리듬으로 흐르고 있다는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작이다. 이런 작품은 시대를 외치는 강골의 호흡이요 선언으로 읽힌다. 금산 첩첩 도라지꽃이 여기 와서 숨어 핀 듯하다. 효심은 효심이라 하는 것 아니라 백일홍 한 그루로도 효심 너머를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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