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김예지 의원이 쏘아올린 몇 가지 가능성
[경일시론] 김예지 의원이 쏘아올린 몇 가지 가능성
  • 경남일보
  • 승인 2023.06.2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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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정재모 논설위원


김예지 국회의원의 6월 임시국회 대정부 질문(14일)이 남긴 여운이 길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한 질문은 꾸밈 없는 예의와 품격 갖춘 질문 자세부터가 눈길을 끌었다. ‘먼저 법무부 장관님 발언대로 나와주시겠습니까?’, ‘답변을 부탁 드려도 될까요?’ 국회의원의 이런 겸손 어투는 우리에게 매우 낯설고 감동적이었다. 아, 저런 의원도 국회에 있구나. 질문을 저렇게 바른 자세로 할 수도 있구나! 김 의원의 질문 태도와 짧은 마무리 연설이 널리 호평을 받았다.

김 의원이 안내견과 함께 발언대에 올라 질문하는 내내 본회의장은 조용했다. 여야 어느 쪽도 항용 터뜨리던 고성이나 야유를 내지르지 않았다. 가라앉은 분위기는 숙연하다 할 만했다. 그 광경을 영상으로 보는 순간 찡해져 왔다. 김 의원의 반듯한 질문 자세와 여야 의원들이 ‘경청’하는 낯선 광경이 사람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1주일이 지난 지금 떠올려도 그 감동이 코끝에 맴돈다.

널리 들었겠듯이 질문의 마무리 발언은 뼈 아프도록 인상적이었다. 환경에 따라 성장 최대치가 크게 달라지는 비단잉어 코이를 끌어온 연설이었다. 개인적으로 처음 알게 된 코이는 어항 속에서 성장이 10㎝ 이내지만 수족관에서는 30㎝까지 크고 강에서는 1m가 넘게 자란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균등한 기회 속에서 재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수족관을 깨고 강물이 되어 달라는 요지였다.

김 의원은 소외된 분들의 대변자로서 모두가 당당한 주권자가 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짧지만 가히 명연설이었다. 최선 다하겠다는 말도 국회의원의 의례적 빈말로 들리지 않았다. 질문이 끝나자 박수소리가 의사당을 가득 채웠다. 여야 없이 상당수 의원은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그 순간 또 한번 찡해졌고 시야까지 흐려졌다. 좋은 질문, 바람직한 회의장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의원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 불러일으킨 감동이었다.

국민 대다수도 감동했던 듯하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장애인 복지 향상에 더욱 분발할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며 “오늘 질문의 주인공은 김 의원”이라고 상찬했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김 의원 질의가 큰 울림을 줬다”며 “정부가 강물이 돼 달라는 당부에 민주당이 입법과 예산과 정책으로 응답하겠다”고 했다. 김예지 의원은 그날 여야 없이 많은 이들의 격려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장관 나오세요!’, ‘총리 답변해 보세요!’ 그동안 이런 권위적 명령 어투만 들으며 한심스러워했던 우리 국민들이다. 그랬던 국민은 예의를 갖춘 김 의원 질문의 구김살 없는 어조에서 격조 있는 국회의 한줄기 가능성을 본다. ‘의원님, 법무장관 한동훈 나왔습니다’, ‘네, 국무총리 나왔습니다’. 발언대에 오른 국무위원들이 시각장애 의원에게 정중히 복명하고 성실히 답변하는 모습에서 협치의 가능성도 본다. 정해진 시간을 넘겨 6분이나 더 주어진 김 의원 질문 내내 의원 누구도 삿대질을 하거나 고함과 야유를 보내지 않았다. 여기서 또 선진 국회의 가능성을 본다.

지금껏 의원들은 대정부 질문을 곧잘 오용했다. 자극적 언사로 강성 지지층을 속시원하게 해주는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대정부 질문은 그러라고 마련해둔 장치가 아니다. 민생 바닥을 생생히 전하고 정부가 제도적 대안점을 찾도록 하자는 게 취지다. 이 점에서 김 의원의 이날 대정부 질문은 내용도 그랬거니와 그 형식면에서 모범사례가 되기에 충분했다.

김예지 의원의 이번 질의가 투계장 같은 국회 순화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싸움닭 같은 의원들이 그 품격 본받아 실천하는 모멘트로 삼을 일이다. 그리하여 온갖 특권 누리는 299명 때문에 국민이 앓는 중증 스트레스를 낫게 해줘야 한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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