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나래 지휘자 "음악으로 평화교류 이끌고 싶어"
정나래 지휘자 "음악으로 평화교류 이끌고 싶어"
  • 백지영
  • 승인 2023.06.2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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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 달아 둥근 달아" 도르트문트 청소년합창단의 한국민요
독일합창콩쿠르서 1등 수상…음악으로 세계 문화교류 꿈꿔
7월 8일 베를린서 한독수교 140주년 공연 총기획 참여
“K-POP(케이팝)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K-클래식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지난 6일 독일 하노버. 진주 출신의 30대 한국인 지휘자가 이끄는 한 합창단이 아카펠라로 한국 민요 ‘달아 달아 밝은 달아’와 한국 작곡가 국현의 창작곡 ‘수리수리 마수리’를 불러 합창단이 기립 박수를 받았다.

 
정나래 지휘자. 사진=본인 제공

특이한 점은 K-POP을 제외하면 유럽에서 연주되는 대부분의 한국 음악은 한국인이 그 주체라는 점과 달리, 지휘자를 제외한 전원이 독일인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대회에서 이 같은 곡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이날 무대는 독일음악위원회가 국가음악위원회, 독일 공영 방송 ARD와 함께 4년마다 개최하는 ‘독일합창단콩쿠르(Deutscher Chorwettbewerb)’로 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권위 있는 합창대회다.

정나래(35) 지휘자가 이끄는 도르트문트 청소년 합창단은 이 대회에서 참여 곡 7곡 중 2곡을 한국 노래로 선보여 우승과 함께 독일 대표 청소년 합창단 자리에 올랐다.

최근 전화로 만난 정 지휘자는 “한국인 지휘자로서 독일을 대표하는 합창단의 지휘자로 선정되고, 한국 합창곡으로 1등을 수상하는 등 대한민국을 빛낼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정나래 지휘자와 독일 도르트문트 청소년 합창단의 공연 장면. 사진=정나래
진주 출신의 정 지휘자는 6살 때 진주YMCA 어린이합창단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삼현여중 재학 시절 선생님 권유로 나갔던 노래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음악인의 꿈을 꾸게 됐다. 부모님 반대로 망설이기도 했지만 2002년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교향악단 합동 공연을 우연히 TV에서 본 것을 계기로 마음을 굳혔다.

정 지휘자는 “한국 성악가가 북한에서 통일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정말 감명 깊었다”며 “단순히 노래만 하는 것을 넘어, 문화로 평화 교류를 이끄는 음악의 힘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나도 저렇게 음악으로 문화 교류를 이끌고 싶다’는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그는 경남예술고등학교와 연세대 성악과를 거쳐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대학원에서 성악과 함께 합창 지휘, 어린이·청소년 합창 지휘 등을 공부한 그는 2020년부터 도르트문트 청소년 합창단을 이끌고 있다. 이 합창단은 독일 서부 NRW(노르트라인 베스트 팔렌)주 도르트문트시에 위치해 800여 명의 학생들이 활동하는 합창단체 ‘NRW주립합창학교’ 소속 합창단 중 하나다.

2021년 시 대표 선발, 2022년 주 대표 선발에 이어 올해 NRW주를 대표해 나간 전국 대회에서 우승하기까지 그가 합창단과 걸어온 길은 쉽지만은 않았다.

독일 원어민과 비교하면 독일어 발음이 유창하지 않은 탓에 학부모의 우려를 받기도 했고, 한국어 곡을 선보이기로 한 뒤 학생들과 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구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독일 공영 방송 ZDF로 송출된 합창단 공연 장면. 사진=ZDF
혈혈단신 독일 땅에서 유일하게 의지해 온 남편이 대회를 3주 앞두고 심장병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는 모든 것을 놓아버릴까 싶기도 했다. 다행히 그의 남편은 현재 회복해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이 남편의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그 옆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70명의 학생과 2년간 준비한 대회를 포기할 순 없다는 생각이 충돌했어요. 결국 모두 다 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오전에는 남편을 간호하고, 오후에는 합창단 연습을, 저녁에는 다시 남편 간호에 나섰다. 무대에서 악보를 보지 않고 전곡을 외운 후 지휘하는 성격상 16곡을 외워야 했는데,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지하철에 탔을 때 곡을 외우는 등 그야말로 1분 1초를 쪼개 썼다.

그는 “고난이 오니 사람이 강해지더라. 정말 힘들었지만 간절함 하나로 견뎠다. ‘즐기는 사람’보다 ‘간절한 사람’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대회 수상도 기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대회에서 정 지휘자가 이끄는 도르트문트 청소년 합창단에 전원 만점을 준 심사위원단은 “40여년 역사상 한국인 지휘자가 1등을 차지한 것은 처음”이라며 “보통 외국에 나왔으면 외국곡을 선곡할 텐데 자국 곡을 선보인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정 지휘자는 앞으로도 독일 제자들과 한국 음악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한국 합창단이 ‘오 솔레미오’, ‘아베마리아’ 등 외국곡을 부르듯, 이제는 외국 합창단이 한국곡을 찾아 부르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도르트문트 청소년합창단과 정나래 지휘자(첫 번째 줄 오른쪽에서 2번째). 사진=정나래
앞으로 4년간 독일을 대표하는 청소년 합창단으로서 참가하는 유럽 합창제와 독일 정부 행사, 내년 10월 뉴욕 순회공연 등이 이런 계획을 구현하는 장이 될 예정이다.

정 지휘자는 베를린 한국문화원이 오는 7월 8일 베를린콘체르트하우스에서 개최하는 한-독 수교 140주년 공연에 총기획자로 참여한다. 그가 이끄는 합창단도 무대에 오르는데, 한국과 독일이 문화로 교류하는 장으로 꾸릴 예정이다.

정 지휘자의 목표는 음악을 통해 고향 진주를 비롯한 한국과 독일의 문화 교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정나래 지휘자(두 번째줄 왼쪽 첫 번째)와 그가 지휘하는 NRW주립합창학교 어린이·청소년 합창단. 사진=정나래
“학창시절 늘 외국 친구들과 교류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작년에 합창단을 이끌고 진주를 비롯해 한국에서 순회 공연을 했는데 제자들이 당시 만난 진주 학생들과 SNS로 여전히 교류하고 있더라구요. 제가 꿈꿔온 그 장을 만들어 준 것 같아 정말 보람있었습니다. 독일에서 더 힘을 쌓아 제대로 된 문화교류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분단의 아픔을 딛고 통일을 이룩한 독일 청소년들의 노래를 통해 한반도 미래 세대에도 ‘우리도 언젠가는 통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전하는 것 역시 그의 꿈 중 하나다.

“제가 남북교향악단 공연에서 희망을 봤듯, 저 역시 한국 유소년에게 문화 예술로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독일에서 더 힘을 쌓아볼 생각입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정나래 지휘자가 수상 후 상장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정나래
도르트문트 청소년합창단과 정나래 지휘자(첫 번째 줄 왼쪽에서 3번째). 사진=정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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