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43] 동양의 지브롤터, 거문도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43] 동양의 지브롤터, 거문도
  • 경남일보
  • 승인 2023.06.2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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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요충지였던 거문도

스페인 이베리아반도 남단에 위치한 지브롤터는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군사적 요충지다. 우리나라에도 한때 지브롤터 못지않게 군사적 요충지였던 곳이 있다. 바로 거문도다. 1885년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 이후엔 영국군 극동함대 사령관 해밀턴의 이름을 따서 포트 해밀턴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도대체 거문도란 섬이 지리적, 군사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길래 동양의 지브롤터라고 하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치가 서해의 홍도에 견줄만한 섬, 백도를 직접 보고 싶어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거문도를 찾았다.

 
우뚝 솟은 흰 바위가 장관인 백도.
진주에서 2시간여를 달려 고흥군 녹동항에 도착했다. 녹동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1시간 40분 정도 걸려 거문도 고도에 닿았다. 거문도는 서도, 동도, 고도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일 작은 섬인 고도가 거문도의 행정 중심지다. 거문도 탐방 도보 여행은 1박 2일 동안 ‘고도-거문도역사공원(해밀턴공원)-백도 유람-신지끼 인어해양공원-녹산등대-(1박)-동백숲터널-수월산 거문도등대-365계단 동백숲길-불탄봉-덕촌-삼호교-고도’ 순으로 하기로 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만큼 강성했던 영국이 왜 하필이면 조선의 작은 섬 거문도를 점령했을까. 1885년 4월 15일에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해 해군기지를 설치한 후 1887년 2월 28일까지 약 23개월 동안 700여 명의 군인이 거문도 고도에 주둔했다. 태평양 북단의 거문도에 영국군을 주둔시킨 이유는 엉뚱하게도 러시아의 남진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추운 겨울이면 바다가 얼어버려서 배를 입·출항시킬 수 없었던 러시아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를 얻기 위해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고자 했다. 그런 러시아의 팽창 정책을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영국이 그냥 둘 수 없었다. 영국은 러시아가 태평양 쪽으로 남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인 거문도를 무단으로 점령했던 것이다.

 
해밀턴공원 영국군 묘지와 추모비.
◇영국군이 꿈꾸었던 낙원, 해밀턴공원

영국군이 주둔한 흔적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는 해밀턴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은 아주 정갈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다. 거문도를 점령해 있던 동안, 사고나 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병사의 무덤 9기 중, 3기가 해밀턴공원에 남아있었다. 묘지 옆에는 ‘동방의 아침’이란 작품명의 추모비도 세워져 있었다.

 
돌담으로 울을 만들어놓은 쑥밭.
내려오는 길에 돌담으로 울타리를 만든 밭에서 주민들이 잡초를 제거한 뒤 빗자루로 밭 바닥을 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밭이냐고 물으니 쑥밭이라고 했다. 거문도의 특산물인 노지쑥을 기르기 위해 저토록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돌담을 따라 내려오다 우리나라 최초의 테니스장인 해밀턴테니스장에 들렀다. 규모도 컸지만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정말 장관이었다.
 
해밀턴테니스장.
고도항에서 유람선을 타고 백도 유람을 떠났다. 상백도와 하백도로 이루어진 백도는 섬의 바위 색이 하얘서 백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매바위, 서방바위, 왕관바위, 형제바위, 석불바위, 궁전바위 등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하얀 속살을 내놓고 탐방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암괴석과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백도는 천연 생태계의 보고로서 1979년 명승 제7호로 지정됐으며 남해의 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빼어난 용모를 가진 섬이다.

두 시간여 동안 백도 유람을 마치고 서도에 있는 인어해양공원과 녹산등대 도보 여행을 했다. 거문초등학교에서 출발해서 녹산등대까지 순환하는 코스로 돌담을 따라 걸어 올라가 건너편 동도와 고도 사이에 펼쳐진 바다 기슭과 섬 곳곳에 터전을 잡은 마을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특히 서도와 동도를 이어놓은 거문대교는 조형미가 아주 빼어났다. 솟은 높이만큼이나 거문도의 새로운 명물로 우뚝 서 있었다. 반석이 깔린 산책로를 따라가자, 어부들이 출어할 때, 태풍이 오는 것을 미리 감지한 ‘신지끼’가 어부들에게 돌을 던져 바다에 나가지 못하게 하여 어부를 구해 줬다는 전설이 서린 ‘신지끼’ 인어상과 무인등대인 하얀 녹산등대가 탐방객들을 맞아 주었다. 등대와 바다, 거문대교와 섬마을 풍경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불탄봉으로 올라가는 365 돌계단.

◇신선이 다니는 동백나무 터널숲길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해밀턴공원 몽돌해변에서 일출을 본 뒤, 거문도 도보 여행을 떠났다. 먼저 서도의 수월산 끄트머리에 있는 거문도등대로 향했다. 바윗길인 무넘이를 지나 수월산 초입에 들자, 동백나무 숲길이 우리를 반겼다. 처음부터 터널로 된 동백숲길은 탐방객들의 입에서 탄성을 지르게 했다. 서로 어깨를 겯고 드센 바닷바람에 맞서는 동백나무들이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백터널이 잠깐 허물어진 틈새로 얼굴을 내민 에메랄드빛 바다가 탐방객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거문도등대는 그 규모가 엄청났다. 1905년 남해안 최초의 등대로 세워진 뒤 지난 100년 동안 남해안의 뱃길을 밝혀오다 2006년 노후화된 등대 옆에 33m 높이의 새로운 등탑을 신축한 것이 지금의 거문도등대다. 자신의 외로움을 불 밝혀서 다른 이들의 길라잡이가 되어주는 등대가 정말 거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대에서 되돌아와 무넘이를 지나 불탄봉 탐방길을 걸었다. 초입에 들어서자 동백나무 숲이 호위한 가파른 365계단이 탐방객들을 맞이했다. 신선바위를 지나자 바다가 산을 잘라먹은 듯한 해안단애가 나타났다. 오른쪽은 동백숲, 왼쪽은 절벽과 바다, 아찔한 곳에는 늘 스릴과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계가 확 트인 불탄봉에 오르자 ‘이곳을 두고 천국이라 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곳에 서려 있는 아픈 역사를 너울 너머로 띄워 보내며 새로운 세상이 밀물처럼 닿기를 기원하며 불탄봉을 내려왔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세 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선 하백도.
쑥밭을 정리하는 아낙네.
반석을 깔아놓은 녹산등대 길.
폐교가 된 거문초등학교.
거문도 서도와 동도를 이어놓은 거문대교.
거문도 등대의 모습.
신지끼 인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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