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미역쌈을 먹으며
[경일춘추]미역쌈을 먹으며
  • 경남일보
  • 승인 2023.06.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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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춘추]미역쌈을 먹으며

이덕대 수필가

 
이덕대 수필가


일전에 고향 근처 건어물 가게에서 멸치를 몇 포 샀다. 재래시장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평범한 가게였다. 나이께나 들어 보이는 내외가 장사를 하는데 외관에 비해 의외로 도시 냄새를 풍기며 나름의 친절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예전에 어물전에서 생선 값을 알아보다 여의치 않아 그냥 뒤돌아서면서 험한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재래시장에 들려도 말없이 물건을 사곤 한다.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며 산골 어리보기 난전 구경하듯 하고 있는데 눈치 하나로 손님이 뭘 사려는지 꿰고 있는 듯 주인은 냉동장치에서 멸치 상자를 들고 나온다. 얼마냐 물었더니 심드렁한 얼굴로 가격을 이야기하곤 긴 설명없이 사려면 사고, 말고 싶으면 말라는 투다.

멸치 값이 비싼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재래시장에서 뭔가를 살 때는 일단 가격흥정을 해야 재미가 있다. 대형마트가 아닌 재래시장을 굳이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물건이 주는 편안함이나 시장골목이 주는 푸근함 같은 것. 어쩌면 아예 일방적으로 붙여 놓은 가격이 어떻다고 말 한마디 못하고 물건을 택하는 순간 돈을 빼앗기는 기분의 야멸찬 도심 속 마트보다는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으냐며 투정이라도 부려볼 수 있는 여유 때문이기도 하다. 멸치 품질이 어떻고 단골손님도 많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물건 값을 깎지 말라는 눈치를 보낸다. 그래도 멀리서 일부러 찾아왔는데 에누리 없냐는 타박을 하자 “이 미역 진짜 좋은 깁니더. 옛날 어무이들이 해산구완할 때 가마솥에 고우 듯 끓여 묵던 바로 그 미역입니더” 하면서 커다란 비닐봉지에 멸치상자와 함께 둥글게 말은 건미역봉지 몇 개를 웃음으로 넣는다. 멸치를 사온 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식탁에 못 보던 미역쌈이 올라오고 느닷없이 아내가 그 때 멸치를 어디서 샀냐고 묻는다. 혹 너무 비싸게 샀다는 말이라도 들을까싶어 조심스럽게 “왜요? 지인의 소개로 시장 건어물 가게에서 샀지.” “다음엔 멸치는 됐고 덤으로 얻어왔다는 그 미역이나 좀 사와요. 어머니가 어릴 때 먹어본 후 옛날 그 바다 맛이 살아있는 미역이 처음이라네. 부드럽고 생미역 같다면서 쌈으로 드시기도 하고.” “그러지 뭐. 근데 그 미역을 팔기도 하나 몰라”하면서 갈치속젓 양념으로 먹는 미역쌈이 풋풋하고 상큼한데 뉴스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로 시끄럽다. 진영싸움에 과학적 근거는 함몰되고 음모론 괴담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오염수 괴담에 소금이 올라탄 모양인데 혹 미역 등속까지 그런 소동에 말릴까봐 시답잖은 걱정을 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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