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거제포로수용소 철모광장과 종전선언
[경일포럼]거제포로수용소 철모광장과 종전선언
  • 경남일보
  • 승인 2023.06.2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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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매년 6월 25일 전쟁 희생자들의 유족과 월남인들은 피울음을 울면서 당한 대로 갚으리라. 곱으로 갚으리라고 다짐하고 다짐한다. 설사 그런 방법으로는 가슴에 맺힌 한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해도 우리들은 오랫동안 총에는 총으로, 칼에는 칼로 대적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왔다. 조금이나마 당시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서 얼마전, 역사체험 관광지인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다녀왔다. 수용소에는 좌우익의 처절한 대립이 있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잔인한 처벌과 살육이 횡행했다. 그런데 살벌한 분위기에서도 약한 자를 배려하는 따뜻함이 있었고, 이념보다 평화를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들 남과 북,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제3국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비겁자, 배신자라고 욕을 먹었지만 좌우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영국의 유명한 그라피티 작가 뱅크시는 평화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전쟁터인 팔레스타인 서쪽 바닷가 성벽에 아홉 개의 그라피티를 그렸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총을 겨누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드는 장벽이 뚫려 평화가 찾아오고, 그 장벽을 아이들이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장벽을 뚫고 구멍을 판다. 그 너머로 천국이 펼쳐지는 가운데 방탄조끼를 입은 비둘기 심장에 사격의 조준점이 맞추어져 있는 그림이다. 전쟁터에도 비둘기가 있다.

거제포로수용소 출구의 철모광장 가운데 1999년에 세운 ‘전쟁, 분단 그리고 화합’이라는 주제의 큰 설치미술품이 있다. 청동으로 만든 작품이다. 철조망에 휘감겨 있는 커다란 철모 옆에서 남북의 군인이 양쪽에서 철조망을 걷어 내고 있다. 감동적이다. 평화는 어느 한쪽이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픔을 외면해서도 안되고, 아픔에만 매달려 있어서도 안된다. 남북이 함께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 화해와 해원이 가능하다.

이렇게 통일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남북이 만약 서로 상대방을 주적이라고 한다면 도저히 철조망을 걷어 낼 수 없을 것이다. 국방부가 발간하는 ‘국방백서’에 ‘주적’을 처음 명시한 것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에 발간한 ‘국방백서 1995~1996’부터다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면서’라는 문구를 넣었다. 1998, 1999, 2000 국방백서에는 ‘주적인 북한이 현실적 군사 위협’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백서가 만들어지지 않다가 노무현 정부 때 발간한 ‘2004 국방백서’에서 ‘북한의…직접적 군사 위협’이라 표기하면서 ‘주적’이란 용어를 없앴다. 천안함 사건 직후인 2010년 5월 이명박 정부는 북한 주적 개념 부활을 검토했다. 하지만 ‘2010 국방백서’에도 ‘주적’이 부활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북한 정권과 북한군으로 특정해 북한 주민을 제외했다. 이 표현이 2012 국방백서는 물론 박근혜 정부 때인 2014, 2016 국방백서에도 유지됐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남북의 대화 분위기는 좋았다. 남북이 종전을 선언하기만 하면 될 정도였다. 대화는 친구와도 필요하지만 적과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남북대화는 단절됐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만 열중하면서 대결을 고조시키고 있고, 우리 역시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군사훈련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한미일 군사공조를 내세우며 대결로 가고 있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거제포로수용소 철모광장의 미술작품을 보면서 휴전을 종전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반전과 종전이 중요하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희망사항인 것 같지만 수용소의 철모에는 남·북한 정권과 주민이 아니라 국군과 북한군이 등장하여 철조망을 걷어 내고 있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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