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더 찬란한 아빠육아 이야기
[여성칼럼]더 찬란한 아빠육아 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23.06.2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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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정 진주YWCA 사무총장
고명정 진주YWCA 사무총장


독박을 풀고 맞돌봄 맞살림을 이루어낸 K-육아 성공기는 겪은 이도, 보는 이도 함께 뭉클하고 뿌듯하다. 각양각색 육아이야기 한보따리씩 풀어놓은 경남일보의 아이사랑 공모전, 올해는 보편화된 육아휴직제도 등으로 아빠의 전담육아 이야기가 눈에 띄게 많다.

부부공동육아는 독박육아를 하는 자도, 그 하소연을 듣는 자도 불만이었던 세계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통합되는 환희를 안겨준다. 육아와 돌봄의 세계가 남녀 지분으로 나누어질 때 서로에 대한 존중과 고마움을 표현하게 된다. 아빠 육아스토리 작품 수가 늘어난 만큼 부부 간 이해가 깊어졌으리라 믿으며 육아이야기 향연으로 들어간다.

남편들은 해본다. 나 아닌 생명을 위한 돌봄과 살림의 하루를 강제 기상으로 연다. 밑도 끝도 없이 아이와 종종거리는 긴 하루는 ‘어른끼리 대화’ 하며 하소연 할 수 있는 아내의 퇴근시간을 간절히 기다리게 한다. 아이를 돌보는 것에 요령이 생길 즈음 살림에 눈을 뜬 아빠는 정리수납전문가과정을 수강하는 등 눈부신 도약을 하며 거듭나는 경우도 보인다.

보조자 포지션일 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적당히 거들고 아이와 아내의 감정과 상황에 영혼 없는 반응을 하던 그들은 주 양육자가 되어서야 구구절절 고백을 쏟아낸다. 돌봄과 살림을 전담하는 자에 경의를 표하고 아이에 대한 친밀감과 애정이 도와주는(?) 모드일 때와는 차원이 다른 것을 알게 된다.

여러 이야기들을 관철하는 핵심 감정과 상황은 ‘당황스러움’이다. ‘모성과 부성’ 이라는 감정을 끌어올려야 했던 초보 부모들은 ‘나의 모(부)성은 프리저브드 플라워(향기없는, 얼려버린 꽃)인가’라며 적잖이 당황하고 자책한다. 오랜 시간동안 매사 계획에 충실하고 치밀한 패턴의 생활방식을 자랑하던 MBTI 유형은 ‘쌍둥이 돌봄’으로 가차 없이 무너져버린다. 아들 셋을 둔 집은 해학과 내려놓음의 역사를 날마다 새로 쓰는 중이다.

아이를 갖고 키우는 동안 부모의 해학과 표현력도 일취월장해간다. 긴장 속에 착상 시도를 반복해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가진 부모는 태명을 ‘찰떡’이라고 지어 부르며 그 시간을 버텨내었다. 봉고차나 코끼리가 내 배와 다리뼈를 수 십 차례 밟고 지나간 후 아이를 만났다며 출산의 고통을 표현해낸다. 내장을 토해낼 듯이 우는 애를 간신히 달래서 평화를 얻고 난 후 방긋거리는 아이는 발 냄새까지 사랑스럽다 말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집안 어른들의 스마트폰 영상통화가 발신되니 아이들은 존재만으로 세대 간 통합을 유일하게 해낸다. 세대 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육아만한 것이 없다. 부모들은 육아를 두고 ‘영혼을 갈아 넣었다’며 서스럼없이 표현한다. 그들의 물오른 이야기들은 십 수년 전, 나의 육아시절도 소환해낸다.

가족에게는 나만 아는 본성과 밑바닥 인격을 자주 노출했고 감정노동을 최소화했으며 사회적인 자아와 다른, ‘자연에 가까운 본연의’ 나를 많이 보였다. 나 아닌 다른 생명을 내 몸보다 더 돌보고 그들의 안위를 두고 간절히 애태우며 기도했던 존재들이다. 육아를 하는 동안, 무한한 책임과 구속감, 두려움과 무기력함을 거듭하며 ‘계획과 가늠’을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함께한 시간의 나이테만큼 몸과 맘으로 부딪히며 만든 추억도 많고 이야기꺼리들이 있어서 생각하면 미소 짓게 하는 것도 가족이 단연 독보적이다.

부부는 가정과 사회를 멀티플레이어로 함께 살아내고서는 다각도의 의무와 자녀에게 쏟던 에너지를 다시, 부부 둘이 잘 지내는데 안배하는 시절을 맞는다. 결혼생활을 유지해내느라 맘대로 하지 못한 수많은 번민과 갈증의 시간들 통과해왔으므로 인생에 대해 한소리 할 수 있는 근육도 생겨났다. 연애, 결혼, 출산, 육아가 더 이상 필수코스가 아닌 시절에 그 과정을 시작하고 겪는 이들을 힘껏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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