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6.25 전쟁, 북한과 강대국 오판으로 시작된 전쟁
[시민기자] 6.25 전쟁, 북한과 강대국 오판으로 시작된 전쟁
  • 경남일보
  • 승인 2023.06.2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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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평양 마셜제도에 수영복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비키니’라는 섬이 있다. 프랑스 파리의 한 패션쇼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한 파격적인 수영복을 보고 디자이너들은 비키니라 불렀다. 미국이 비키니섬에서 행한 핵실험만큼이나 충격적이라는 의미였다. 실제로 비키니섬은 미국의 핵실험장이었다. 미국은 이 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 7월부터 1958년까지 23차례의 핵폭탄 실험을 했다.

이 핵실험은 소련의 확장 억제를 위한 미국의 핵심 전력이 됐으며 새로운 국제질서 개편의 신호탄이 됐다. 미국의 핵실험은 최강의 지상군 전력을 가진 소련의 확장 억제를 위한 비대칭 전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낸다. 미국은 이미 2차 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재래식 무기에 비해 경제적이면서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핵폭탄의 위력을 실감했다.

하지만 1949년 8월 소련의 핵실험 성공은 미국과 대등한 힘을 가지게 했다. 이 무렵 국제질서를 변화시키는 또 다른 변수가 생겨난다. 1949년 국공내전의 결과로 대륙에는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타이완에는 장제스가 중화민국을 수립하면서 2개의 중국이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는 한반도 전쟁의 기원에도 영향을 미쳤다.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딘 애치슨’은 알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대소련 봉쇄선이자 극동 방위선인 애치슨라인(Acheson Line)을 발표한다. 애치슨라인에는 한반도와 대만은 포함되지 않았다. 즉 한반도는 미국의 아태지역 방어선에서 제외되어 있었으며 소련과의 전쟁 시 미국은 한반도의 방어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치슨라인 발표가 있기 전 1946년 6월에 한국에 주둔 중이었던 미군을 일본으로 철수시켰고 전쟁 발생 시 오키나와에서 반격한다는 계획이었다.

애치슨라인에 한반도와 대만을 포함하지 않은 이유는 소련이 동유럽을 중심으로 공산화를 넓혀 가고 있었으므로 미국의 세계질서 전략은 유럽에 중심을 두었다. 또한 국제사회의 변화에 미국은 일일이 개입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연히 국제질서 전략의 중심은 유럽이 되었고 아시아는 뒷순위가 됐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오판은 계속됐다. 미국은 북한이 남침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고 설령 남침하더라도 남한은 이를 충분히 저지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미국의 오판에 이어 공산권의 오판도 이어진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 김일성은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을 두 번 만났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허락받기 위해서였다. 1949년 3월 첫 번째 방문에서 김일성은 남침을 위해 스탈린을 설득했으나 전쟁을 강행하면 한반도 전쟁에 미국이 개입할 수 있다고 판단해 반대한다. 1950년 3월 김일성은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을 다시 만난다. 이때 소련은 핵실험 성공으로 인해 달라진 위상으로 김일성의 군사적 행동에 동의한다.

단, 중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단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스탈린과 김일성은 전쟁이 발생하더라도 미국의 개입은 없으리라 판단했다. 김일성은 스탈린의 동의로 같은 해 5월 마오쩌둥에게 전쟁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고 미국의 전쟁 개입을 우려하면서도 동의한다. 이러한 오판은 실행으로 옮겨졌고 공산권의 판단과는 다르게 전쟁 시작과 함께 미국은 한국전쟁에 즉시 개입한다. 결국 미국은 한반도에서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 소련과 중국 역시 미국은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이렇게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오판에서 시작됐다.

많은 나라들이 전쟁의 참혹함을 겪고 나름의 방식으로 그 전쟁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일을 정한다. 우리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많은 나라들과 다르게 우리는 그 전쟁을 기억한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전쟁이 끝난 날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의 시작 일을 기억한다. 전쟁의 끝을 기억하는 민족은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전쟁의 시작을 기억하는 민족은 증오와 복수를 이야기한다. 반공교육 세대인 필자가 많이 불렀던 ‘6.25의 노래’ 가사처럼 조국의 원수들을 무찌르고 쳐부수고 멸공만을 외치면 그들은 남한을 신뢰하지 못하고 비대칭 전략 무기와 같은 핵무기 고도화에 집중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쟁의 기원과 기억에 대한 쟁점을 다르게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가가 아니라, 왜 쏘게 됐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또다시 한반도에서 강대국들의 대리전을 치르는 과오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1950년부터 정전협정이 있었던 1953년까지 이어진 3년간의 전쟁에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지나왔고, 그 싸움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싸움이 길어지면 나중에는 싸움의 원인은 잊은 채 싸움에만 집중한다. 결국 악순환의 반복이며 평화는 늘 희망으로만 남는다. 전쟁에 대한 기억 방식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그 전쟁의 기억 방식이 미래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

최웅환 시민기자(통일학 박사)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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