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초대석] 양지선 ‘궁으로 간 최순이’ 저자
[문화 초대석] 양지선 ‘궁으로 간 최순이’ 저자
  • 백지영
  • 승인 2023.07.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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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검무 싹 틔운 최순이, 묻히게 둘 순 없었죠”
지난달 28일 진주시 가좌동 경상국립대 박물관 건물에서 양지선 경상국립대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저서 ‘궁으로 간 최순이’를 들고 사진 촬영에 나서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달 28일 진주시 가좌동 경상국립대 박물관 건물에서 양지선 경상국립대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저서 ‘궁으로 간 최순이’를 들고 사진 촬영에 나서고 있다. 백지영기자

 

“진주검무 이수자로서, 그리고 연구자로서 진주검무의 씨앗을 그리는 책을 내는 게 꼭 ‘운명’ 같았습니다.”

최근 경상국립대 출판부는 궁궐에서 배운 검무를 고향에 전파해 국가무형문화재 진주검무의 싹을 틔운 예인을 조명하는 책 ‘궁으로 간 최순이’(264쪽, 1만8000원)을 펴냈다.

지난달 28일 진주시 가좌동 경상국립대 출판부에서 만난 저자 양지선(50) 경상국립대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여러차례 강조했다.

하동 화개에서 태어난 양 교수는 13살의 나이에 서울 유학길에 올랐다가 가세가 기울면서 18살에 진주로 낙향했다. 진주검무를 처음 접한 것은 25살, 남들보다 한참 늦은 나이다.

“갑자기 서울 유학을 접게 되면서 좌절감이 상당했어요. 어머니도 돌아가시면서 한동안 방황했죠. 어느 날 친구가 춤추러 간다길래 호기심에 따라간 곳이 진주검무보존회였어요. 집에 돌아왔는데 해금, 아쟁 같은 국악기 반주가 빚어내는 생음악 소리가 매미 소리처럼 맴맴 울려 잠을 못 잤습니다.”

그 길로 매일 춤을 배우러 나선 양 교수는 성계옥과 정금순을 사사하며 진주검무와 포구락무 등 교방 문화의 춤을 이수했다. 자연히 사랑하는 춤을 더 알고 싶다는 공부 욕심이 생겼고, 경상국립대 편입을 택했다. 춤을 추며 마주하는 다양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고문헌을 뒤졌다. 박사 학위 논문이었던 영남교방문화 연구를 바탕으로 2020년 일종의 학술 연구서인 ‘경남 교방문화를 말하다’를 발간했다.

이를 계기로 출판사는 그에게 지역 인물을 다루는 책을 내보자고 제안했다. 앞선 학술 연구서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진주검무 이수자들에게조차 이름만 겨우 전해지는 최순이가 떠올랐다.

진주검무의 씨앗과도 같은 예인이지만, 그간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했던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같은 나이에 서울로 향했다 낙향한, 우연의 일치도 왠지 운명처럼 느껴졌다.

“10년 전쯤 논문을 위해 ‘개천예술제 40년사’를 구매했는데, 그 책에서 우연히 최순이의 예명 ‘최완자’를 보고선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에는 다른 논문을 쓰고 있었던 만큼, 누군가는 최순이를 조명하겠거니 했는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더라고요. ‘지금 제가 쓰지 않으면 아무도 쓸 사람이 없다, 최순이라는 인물이 영원히 묻힐 것이다’는 출판사 설득에 완벽하진 않더라도 써보자고 결심을 굳혔습니다.”

최순이는 진주 교방 출신으로, 13살이 되던 해 선상기로 선발돼 홀로 한양으로 떠난다. 조선 말 궁궐의 관기로 춤과 노래, 악기 연주를 연마하며 전문 예술인의 길을 걸어갔지만 조선이 몰락하면서 관기의 신분에서 벗어난다.

다른 관기 출신 기생들처럼 요리점에 취직해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쉬운 방법도 있었지만, 18살의 나이로 고향 진주에 내려와 궁중의 춤을 전수한다. 기생들이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만든 기생조합부터, 진주 권번에 이르기까지 제자를 양성하는 진주검무 스승으로 평생을 활약한다.

“1952년 국립국악원이 개천예술제 공연을 위해 진주를 방문했어요. 이 소식을 안 최순이가 공연 전날, 제자들을 이끌고 이들이 묵고 있던 진주성 맞은편 동명여관을 찾아가 연주를 부탁합니다. 전쟁통 악사 부족으로 장구 장단에만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검무는 대금, 아쟁 등 선율을 배경으로 출 때와 느낌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렇게 국립국악원 반주에 맞춰 진주검무를 추게 됐는데, 궁 무동 출신으로 당시 국립국악원에 몸담고 있던 김천흥이라는 분이 이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자신이 궁중에서 봤던 춤이 머나먼 진주 땅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었으니까요.”

이후 1967년 진주검무는 전국의 춤 중에서 유일하게 지역 이름을 앞에 달고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 지정에 앞서 진행된 조사 보고서에도 최순이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하지만, 정작 문화재 보유자로는 최순이가 아닌 그의 제자 8명만 이름을 올린다.

양 교수는 “최순이가 1969년에 숨진 만큼 연로했다는 게 이유였던 것 같지만, 그래도 궁중의 검무를 진주에 전수한 그 공로를 생각하면 예우상 지정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고 했다.

진주검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진주시민으로서 다른 춤의 계보는 몰라도 최순이라는 이름 하나만큼은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일념으로 3년을 달려왔다.

쉽지만은 않았다. 양반도 평민도 아닌 천민으로 분류되던 교방의 관기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자료가 극히 적었다. 존재 여부조차 할 수 없는 보석을 찾기 위해 모래사장을 파헤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고종실록, 의궤 등에서 발굴한 자료를 바탕으로 학술적인 내용 절반, 상상의 나래를 펼쳐 쓴 내용 절반으로 책을 완성했다.

소설가가 아닌 연구자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양 교수는 “논문이라면 고증만 하면 되니 10편도 술술 썼을 텐데, 이건 그의 삶에 들어가야 하는 거다 보니 쉽지 않았다. 너무 터무니 없이 각색해 소설처럼 쓸 수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픽션과 논문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눈금자를 들이대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이번 책이 독자들에게 최순이라는 이름을 각인하는 한편 교방이 일종의 ‘조선의 아이돌 학교’였다는 인식 제고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최순이는 요즘의 2030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은 인물입니다. 조선왕조부터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광복까지 4개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쉬운 선택지 대신 제자를 양성하는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살았죠. 여성으로서든 예술가로서든 아니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든, 역경 앞에 내가 하는 일을 묵묵하게 해나가는 삶이 가장 위대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지난달 28일 진주시 가좌동 경상국립대 출판부에서 양지선 경상국립대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저서 ‘궁으로 간 최순이’를 들고 사진 촬영에 나서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달 28일 진주시 가좌동 경상국립대 박물관 건물에서 양지선 경상국립대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저서 ‘궁으로 간 최순이’를 들고 사진 촬영에 나서고 있다. 백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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