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최치원과 정약용의 자유
[경일포럼]최치원과 정약용의 자유
  • 경남일보
  • 승인 2023.07.05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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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자유와 부자유를 논할 때, 이 두 가지 개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몸의 자유와 마음의 자유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의 이런저런 일들이 모호할 때가 적지 않다. 자유와 부자유를 가르는 조건 중의 하나는 주체의 행위를 자기 원인에서 찾는가, 타자 원인에서 찾는가에 달려 있다. ‘자유(自由)’라고 하는 말됨됨이(조어)를 보자. 동양권에서의 이 단어는 글자 그대로 ‘스스로 말미암다’이다. 즉, 내 탓이요, 하고 생각할 때 자유롭다. 자꾸 남 탓을 하면,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다. 일반적으로, 자유는 영어 ‘프리덤’과 ‘리버티’의 근대적 번역어로 여겨왔다. 하지만 자유는 우리나라 문헌에서도 확인이 되듯이 오래 전부터 써온 단어다. 내가 ‘한국고전종합DB’에다 이 단어를 검색해 보았더니, 무려 206종의 용례가 확인되었다. 우리의 옛 지식인들은 이 단어를 거의 상용하는 수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운 최치원은 ‘바다 갈매기’라는 7언시를 지은 바 있다. 정황상으로 볼 때 부산 해운대에서 짓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겨울이면 동백섬 부근에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배회한다. 내 도로명 주소지가 동백로여서 잘 안다. 그의 시에는 ‘출몰자유진외경(出沒自由塵外境)’이란 함축적인 7언이 담겨 있다. 갈매기가 ‘진’과 ‘외경’의 경계선에서 자유롭게 출몰한다는 뜻이다. 자신도 시쳇말로 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부산갈매기’가 되고 싶었던 걸까? 먼지를 가리키는 ‘진’은 속세요, 진의 바깥 경지를 가리키는 ‘외경’은 탈속이다. 세속과 탈속을 오가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저 바다 갈매기를 쳐다보면서, 그는 진정한 자유를 향유했던 것이다. 최치원의 자유는 지금의 관념에서 볼 때, 무경계성, 혹은 탈경계성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자유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 유배지 야산의, 솔바람이 부는 다산초당에서 긴 시를 썼다. 그저 겸손하게 유배인의 잡감을 담았다는 뜻의 제목인 ‘송풍루 잡시’는 무려 128행이나 되는 장시다. 두 행인 열네 자만 인용하자면, 산거무사불우유(山居無事不優游), 오매가언득자유(寐寤歌言得自由). 정약용은 자신의 유배생활을 이처럼 ‘산거(山居)’라고 했다. 산에 갇힌 자신의 생활은 그다지 일이 없다. 그는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이 긴 세월을 허송세월이 되지 않도록 방대한 분량을 저술하고 현지 제자들을 모아 가르쳤다. 물론 우유(優游), 넉넉히 놀 수 없다고 했으니, 행동의 제약은 있었으리라. 그렇지만 마음대로 잠을 잘 수도, 잠을 깰 수도 있고, 또한 언제라도 가언(歌言)이라. 노래할 수도, 말할 수도 있다. 이런 데서, 그는 자유를 느꼈으리라. 그는 음악에 조예가 있어 ‘악서고존’을 저술했듯이, 혼자서 심심풀이로 창을 한 것 같다. 평소에 과묵한 그도 제자들 앞에선 다언이었을 것. 열정적인 강학이 눈에 선하다. 그가 그토록 오랜 세월을 변방에 유배되었는데 포한과 분기가 왜 없었겠는가? 그는 개인적인 분기를 정신적인 자유로 승화함으로써 사마천의 경우처럼 이른바 ‘발분저술’를 성취할 수 있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부자유한 사람이 정치인이라고 본다. 만날 남 탓만 하니까, 말이다. 한 번 남 탓을 하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 ‘내로남불’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서구적인 모델인 것은 사실이지만, 자유정신은 우리에게도 있었다. 권력을 탐하면, 자유롭지 못하다. 권력에서 소외된 최치원과 정약용이 왜 자유로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현 정부가 표방한 자유가, 모든 게 내 탓이요, 즉 자기 원인과 자기 책임에서 찾는 자유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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