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내 탓
[기자의 시각]내 탓
  • 백지영
  • 승인 2023.07.0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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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부 백지영
백지영기자


어느 휴일 오전 8시, 울분 섞인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도내 한 문화예술기관장 채용 과정에서 목격한 부조리에 환멸이 인다고 했습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표현, 글자가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로 들은 것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이렇게 돌아가는 걸 알면서도 아직 경남 예술에는 희망이 있다고 착각했던 자기 자신에게 가장 화가 난다고 했습니다.

민선 8기 출범 1년, 경남도와 각 시·군에서는 지자체 산하 기관장과 출자·출연기관장 보은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분야들이 그렇듯 문화예술 분야도 마찬가지고요.

얼마 전 보은 인사 논란에 휩싸인 한 지자체장이 내놨다는 해명을 접하고 웃음이 터졌습니다. ‘적합한 사람을 뽑으려 노력했지만, 실제 모집을 해보면 사람이 안 온다. 더 나은 사람이 없었고, 전문가들을 계속 모셔 오기도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채용 공고에 관련 전문가가 상당수 지원했음에도 ‘해당자 없음’ 처리된 한 기관. 재공고 결과 수십 년 전 몇 개월 근무했던 것을 ‘관련 경험’으로 내세운 고령의 전직 공무원이 수장으로 낙점됐지요. “자기 사람을 바로 앉힐 순 없으니 명분 축적용으로 첫 공고를 ‘해당자 없음’ 처리한 뒤, 재공고에서 어쩔 수 없는 척 앉히는 전략 전술”이라는 지적이 바로 따라붙습니다.

또 다른 기관을 볼까요. 채용 면접 참석자 중 1명 외에는 모두 해당 기관 혹은 동종 기관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였지만, 유일하게 관련 근무 이력이 없던 인사가 합격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바로 ‘집회라도 해야 하나’는 반발이 터져 나오더군요. 물론 집회를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고, 앞으로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체 예술 활동만으로는 생존이 힘든 도내 예술인 대다수는 공모 사업 등 여러 측면에서 예산을 내려주는 지자체·기관의 관계가 악화할 경우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목소리를 못 낼 걸 알기 때문에 더 눈치를 안 보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이럴 거면 ‘개방형’ 직위 공모나 ‘공개’ 채용 제도로 전문가들을 희망 고문하지 말고, 처음부터 밀실에서 원하는 인사를 임명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농담이 더는 농담처럼만 들리지 않습니다.

지자체장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나와 깊은 인연이 있고 정치 성향 등도 맞는 사람을 앉혀 마음껏 휘두르는 게 편하겠지요. 누구나 인정할 만큼 경력이 풍부한 전문가가 수장에 낙점됐다면 그가 지자체 수장의 선거 캠프 선봉장을 맡았든, 혹은 지자체장이 공직 사회에 있을 때 보좌해 끈끈한 인맥을 자랑하든 볼멘소리가 훨씬 적었을 겁니다.

부디 앞으로는 지원한 전문가군 중에서 입맛에 맞는 이를 선택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더는 끈 없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왔던 도내 전문가들이 비전문가에게 밀려 ‘내 탓’이라고 푸념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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