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한국은행이 경주 십원빵에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사용을 금지시키는 행위가 옳은가
[경일포럼] 한국은행이 경주 십원빵에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사용을 금지시키는 행위가 옳은가
  • 경남일보
  • 승인 2023.07.1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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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규 객원논설위원·변호사
조상규 객원논설위원·변호사


천년 고도 경주에는 수없이 많은 문화재와 관광자원들이 존재한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다녀온 곳이기도 한 경주에 최근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그것은 바로 황리단길이라고 하는 상권이 조성돼 많은 국내 및 해외 관광객들이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찾아 주말이면 주차대란에 북새통을 이룰 정도로 활성화됐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신혼여행을 경주로 다녀온 부모님 세대와 트렌디한 감성을 추구하는 젊은 MZ세대까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유례없는 성공사례로 손꼽히며 지역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요즘 지역 살리기라는 관점에서 매우 긍정적이고 환영할 만한 일이 됐다.

이러한 황리단길이 낳은 유명한 지역 명물 중에는 십원빵이라는 것이 있다. 십원 주화 모양을 한 빵인데 경주 불국사 다보탑이 십원 주화에 그려져 있다는 것을 착안해 주화 중에서도 경주와 연관 있는 십원 주화 모양의 빵을 만들어 판 것이다. 십원빵 인증샷을 올리는 재미로 인기를 끌며 매출이 급상승하면서 매장이 17개 정도 생겨났고, 서울 진출까지 이루어진 모양이다. 즉 경주 황리단길을 대표하는 명물이 바로 십원빵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잔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달 한국은행이 십원 주화 도안의 저작권을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십원빵 제조업체를 상대로 사용금지를 요청한 것이다. 해당 뉴스를 접한 순간 필자에게 든 생각은 한국은행이 최근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연준 따라서 금리 흉내만 내다보니 한가한 것은 이해를 하겠으나, 공무원이 일이 없으면 쓸 데 없는 일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한은은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지방이 소멸되고 있는 지금 경주라는 지방에서 명물이 되어 국민들에게 재미있는 간식거리가 되고 있는 십원빵 제조업체를 상대로 과연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사용을 금지할 때인가? 문화예술저작권 책을 쓰고 예술의 전당에서 법률자문을 했던 필자입장에서는 여러가지 비상식적인 요소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 침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의거성과 실질적 유사성이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저작권 침해 판단의 툴을 사용해 보면 십원빵의 출시가 십원 주화 발행 이후라서 의거성은 당연히 인정된다. 그러면 실질적 유사성에 대해 살펴보자. 십원빵은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이므로 주화에 비해 크기가 매우 크다. 소재가 풀빵 비슷한 밀가루 빵이라서 재료가 다르다. 주화와의 혼돈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은은 2차적 저작물작성권 침해를 주장하는 듯하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고객이 십원빵을 사먹을 때 화폐위조라는 생각을 하거나, 십원빵이 한국은행에서 만들어 파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품에 대한 고객 흡입력은 한은이 그린 십원 주화의 도화모양이 너무 예쁘다거나 동그란 모양이 좋다는 심미적 관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거의 사용을 하지 않아 사라져버린 십원 주화에 담긴 추억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경주를 상징하는 다보탑 문양이 주화에 새겨져 있어 경주 관광을 즐기기 위해서 관광객들이 십원빵을 사는 것이다.

저작권자인 한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십원은 현재 실제로 유통이 거의 되지 않는 주화이다. 한은은 십원 도안을 이용해 수익창출을 하지도 않고 십원빵이 잘 팔린다고 하여 한은에 손해가 발행하지도 않고 있다. 한은은 화폐도안의 건전한 사용을 위해 화폐도안 이용 기준을 정해놨고 영리 목적 사용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마약김밥이 마약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금지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화폐 도안을 빵에 새겨 넣어 먹는다고 해서 화폐의 신용도가 하락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은이 더 잘 알겠지만 화폐의 가치는 우리나라의 경제력에 달린 문제이지 화폐도안의 저작권 보호에 달린 문제는 아니다.

십원짜리 화폐의 도안은 누구나 자유롭게 창작의 소재로 쓸 수 있는 공공의 영역에 들어왔다고 보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화폐도안을 이용한 많은 제품들이 수도 없이 존재한다. 특히 미국 달러의 경우에는 의복, 장신구 등 어떤 제품을 만들어도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서울의 남산타워도 건축저작물의 대상이다. 한국은행의 논리대로라면 저작권이 존재하므로 함부로 건축물의 모양을 본뜬 유사 제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판례에 따르면 태극문양도 히딩크 감독 넥타이 사건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소재로서 공공의 영역으로 판단했다. 이외에도 예를 들 것은 차고 넘친다.

지역경제가 어렵다. 지역 명물을 만들어서 흥행에 성공하기는 더 어렵다. 영세 상인들을 살리기에도 힘든 이 때 매우 훌륭한 지역 명물 케이스가 되고 있는 황리단길 십원빵을 굳이 한국은행이 나서서 저작권을 주장하며 생산 및 판매를 금지시키는 진짜 이유가 뭘까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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