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만족스러운 죽음을 위한 모두의 선결 과제
[경일칼럼]만족스러운 죽음을 위한 모두의 선결 과제
  • 경남일보
  • 승인 2023.07.1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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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인준 진주 당당한의원 대표원장
어인준 진주 당당한의원 대표


누구에게나 삶의 어느 순간에는 돌봄이 필요하다. 신생아의 첫 울음에서부터 노인의 마지막 숨결까지, 우리는 때로는 돌봄을 제공하는 자가 되고, 때로는 돌봄을 받는 자가 된다. 돌봄이라는 서비스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서 상호 의존하는 존재임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분야다.

특히 한국에서는 절반 이상의 가정이 맞벌이 부부로 이루어져 있어, 아이 돌봄 서비스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표현력이 부족하므로 학대가 즉각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벌어진 장애아동학대사건도 그러하다.

2022년에 15명의 아동이 석 달 동안 500회에 걸쳐 학대당한 일도 한 학부모의 신고에 의해 밝혀질 수 있었다. 사실 부모에게도 육아 전문교육을 이수할 의무가 없으며, 아동학대의 80% 이상이 부모에 의해 발생한다. 부모조차도 실수 없는 자녀양육을 확신하기 어려운 판국에 안심할 수 있는 아동 돌보미를 구하는 것도,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르신들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노인장기요양제도의 도입과 함께 요양보호사가 등장하면서 어르신들에게 전문적인 돌봄을 제공하게 됐다. 어르신들 역시 배우자, 자녀와 같은 보호자로부터의 학대가 전체의 70%가 넘으며 가정과 시설 등 생활전반에서 학대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게다가 고령화율이 높아지면서 노인학대의 신고와 판정 건수 모두 크게 증가하고 있다.

마치 돌봄 대상자들이 신체적 취약성으로 인해 불안을 겪듯, 돌봄 서비스 제공자도 사회적으로 낮은 처우와 인식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상남도 돌봄 노동자 권익 조사에 따르면 많은 근로자가 농사일 등 돌봄과 무관한 과도한 요구, 폭언, 폭행, 성폭력 등에 노출돼 있다.

치매처럼 뇌기능의 퇴행을 겪는 어르신과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 등 대상자의 취약성으로 발생한 어려움은 어느 정도 대처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보호자로 인한 폭력은 더 대처하기 어렵다. 교육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사회적으로 선망 받는 교사들도 학생들에 대한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으로 고통 받고 있다. 하물며 대체로 저임금으로 근무하는 돌봄 근로자의 상황은 더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서로를 신뢰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시켜주는 매칭 시스템을 제공하는 플랫폼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돌봄의 가이드라인과 정책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호간에 신뢰를 구축하려면 서로의 상세한 이력과 후기가 서로 공개되어야 하며, 돌봄 서비스의 영역과 범위를 정의하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합의돼야 한다. 민간 차원에서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공공정책을 통해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돌봄 서비스는 개인의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아갈 방향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돌봄이 필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대비해 돌봄 서비스산업이 상호 신뢰를 갖춘 시스템을 바탕으로 발전해, 세계를 선도하는 우수 문화서비스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가 돌봄 서비스의 가치를 인정하고,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세상에 싸고 좋은 서비스는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평온한 죽음을 위해 우리 사회는 얼마까지 지불할 것인가. 그리고 그 금액에 합당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돌봄 서비스 산업의 발전과 이용문화의 성숙 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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