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경전(이오장)
[주강홍의 경일시단] 경전(이오장)
  • 경남일보
  • 승인 2023.07.1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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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이오장)
 

 

비에 젖어 드러누운 억새에서

들려오는 아버지말씀

“비 맞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슬에도 자빠진다”

“비 맞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

도롱이 쓰고 삽 챙기며 하시던 말씀

빗방울마다 우러나와 바람 탄다

흩어지는 빗물에 젖어

우두커니 서서 열어젖힌 귓속에

우르르 쏟아져 들어온 아버지의 경문

우산대 손잡이 불끈 잡고

빗방울 따라 읊는다

삶은

배움의 기억으로 펼쳐나가는 굽은 길

고개 떨구며 주저앉을 때마다

아버지는 어디에든 경전을 펼쳐주신다

잠시 멎은 비에 우뚝 일어서는 억새

빗방울 털어낸 우듬지가

산을 꿰뚫을 기세로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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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내내 장맛비가 더 세다. 저 허공에서 귀하게 계시다가 어쩌다 떨어져서 지금 그 과정이 험악하시다.

고량을 만들고 냇가로 몰려들어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지친 삭신을 더욱 절룩이게 한다.

도롱이를 쓰고 논물을 열어주시던 아버지, 장대비에 생존의 갈래를 여시던 말씀이 지금도 낭랑하시다.

사태를 극복하고 단단히 살아야 한다는 그 교훈은 내 삶의 지침으로 가슴팍에 경전으로 새겨져 있다.

굽은 것을 바로 펴고 해어진 곳을 꿰매면서 단호한 말씀은 늘 헐렁해진 세상의 각오이고 일갈이셨다.

경험은 지혜다.

힘든 한때를 지나면 새로운 생장점을 찾게 된다

견디고 길을 찾으시던 아버지의 말씀, 고전이며 거룩한 경전이다.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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