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저출산 문제, 백약이 무효란 말인가
[경일시론]저출산 문제, 백약이 무효란 말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23.07.1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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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백약이 무효란 말이 떠오른다. 안타깝게도 저출산, 고령화 대책이 그러하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우리보다 출산율이 두 배 가까이 높은 프랑스(1.9), 미국(1.8) 등 선진 복지국가의 제도를 도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백약’이 ‘수백약’이 되어도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결혼과 출산이 매우 개인적인 일이지만 개인의 선택이 모여 국가 전체의 인구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국가는 인구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인구증가가 폭발적일 때는 사회의 고용 흡수력과 부양 능력의 한계 때문에 산아제한에 나섰고, 생산인구의 부족이 예상될 때는 출산율 제고에 나서게 된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이 끝나고 출산율이 급격히 높아지자 식량을 비롯한 각종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산업화 시기인 1960년대 초부터 30여 년 동안 강력한 인구억제정책을 추진했다. 인구억제는 범사회적 운동이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1960년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1970년대)’,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1980년대)’라는 구호들이 유행했다. 그러다 2001년 출산율이 1.2로 감소하면서 인구억제정책은 출산장려정책으로 바뀌었다. 2006년부터는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5개년 장기계획)이 3차에 걸쳐 수립돼 시행 중이다. 주요 내용은 무상보육과 육아휴직 기간 확대, 방과 후 돌봄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에는 역대 최저 출산율(0.78)과 함께 출생아수가 1970년 통계작성 이후 최저인 30만 명 이하로 줄었다.

도대체 프랑스나 미국의 출산율이 우리의 두 배 수준에 달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가족제도와 고용구조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 프랑스는 가정이나 결혼에 있어서 법률혼이 아닌 동거도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로 보고 있다. 국가는 개인 간의 동거계약(PACS)만 있으면 조세, 육아, 교육, 사회보장 등 모든 측면에서 법률혼과 동등한 대우를 해 준다. 동거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출생아의 50%를 차지한다. 초산 연령도 낮다. 공보육도 발전했지만, 국가는 다양한 형태의 아이 돌봄을 지원한다. 자녀 1인당 월 평균 800유로(120만원 상당,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 정도 지급한다. 부모들은 이 돈으로 민간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형태와 수준의 보육시설을 이용하거나, 개인적으로 혹은 여러 부모가 함께 유아 교사를 고용해 공동육아를 한다.

미국도 자유롭고 유연한 고용구조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법적으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 보장된 나라가 아니다. 아동수당은 물론 공보육이란 개념조차 없는 나라다. 그런데 고학력 이민자 중산층 여성들의 출산율도 2.0에 육박한다. 여성 고용률도 높고, 경력단절 현상도 크지 않다. 미국 여성들은 여성이라고 차별받지 않는다. 직장 내 임금과 승진에서의 차별도 없다. 성별 불문하고 직무급이고 개인별 고용계약이 일반화돼 있기 때문에 근로자 개인의 능력과 육아 등의 필요에 따라 근로시간과 임금을 조정할 수 있다. 즉 출산과 육아기에 개인별 필요에 따라 일, 가정 양립의 조건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도 매년 30조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붓는 저출산 대책이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결혼 형태나 고용구조도 선택의 자유와 유연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깊이 검토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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