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킬러 문항과 대학입시
[경일포럼]킬러 문항과 대학입시
  • 경남일보
  • 승인 2023.07.1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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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임규홍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선생 사십 년을 했는데도 최근 나도 모르는 무슨 해괴한 말을 들었다. 요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이른바 킬러 문항이란 말이다. 굳이 섬짓한 외래어를 써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그 말이 말이 되는지도 모른다. 누가 누구를 죽인다는 말인가. 문항을 죽인다는 말인지 수험생을 죽인다는 말인지. 아마도 정상적으로 학교 공부를 한 수험생들은 풀 수 없게 만드는 문항이라는 말 정도는 알겠다. 값비싼 사교육을 받은 돈 많은 자녀들만 풀 수 있는 문제라 유전유대 무전무대라고나 할까. 일부 몰지각한 시험출제위원들과 학원이 짜고 문제를 팔고 사고 했다니 할 말이 없다.

대학에는 2학기만 되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교수들이 있다. 수능출제위원으로 뽑혀간 교수들이다. 늘 같은 교수가 자리를 비우니 누가 봐도 출제위원으로 간 걸 알 수 있다. 교육평가원에서는 출제 문제에 혹시 잘못이 생길까 불안하기 때문에 출제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는 그들을 계속 선발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건 보신주의고 편의주의다. 그러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참신하고 창의적인 새로운 문제도 나올 수 없고 누가 출제위원인지 쉽게 외부에 알려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입시 문제는 두 가지 핵심적 전제에서 흔들렸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것은 공교육의 연계성과 대학 자율성이다.

공교육의 연계성이란 공교육인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수학능력과 연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기만 하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대학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고등학교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가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대학의 자율성이다.

대학은 공교육의 범위에서 벗어난 고등 교육기관이다. 수능과 수시와 정시의 시기 등과 같은 큰틀은 고교 교육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기 때문에 국가에서 규제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입학 전형 방법은 대학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란 이름대로 대학에서 공부(수학)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하면 풀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 결국 자격시험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만점도 많이 나올 수도 있다. SAT(미국대입자격시험)는 해마다 만점이 1000명 이상 나온다고 한다. 만점을 받고도 대학에 떨어지는 사람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따라서 킬러 문항이라는 해괴한 문제도 낼 필요도 없고 내어서도 안 된다. 대학은 시험에 응시한 학생 중에서 수능 성적과 내신, 적성, 잠재적 능력을 다양한 평가방법으로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면 된다.

학생은 자기가 갈 대학의 입학 전형에 맞추어 준비하면 그만이다. 전형이 어렵고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그 대학에 지원하지 않으면 된다. 그래도 가고 싶으면 힘들더라도 그 입학 전형에 맞추어야 한다. 그렇다고 대학이 굳이 지원자의 요구나 입맛에 맞는 전형 방법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대학의 존립 의미로 보나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의 성격이나 전공에 따라 학생 선발 방법이 달라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대학 입시 전형은 국가에서 통제할 일도 간섭할 일도 아니다. 학생도 학부모도 관여할 일이 아니다. 다만 공정성과 신뢰성은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학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대학마다 신입생 유치에 난리다. 입학생을 상전 모시듯 모셔와야 하는 시대가 됐으니 앞으로 대학 입학 전형도 필요 없는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답은 없다. 단지 하나의 희망일 뿐이다.

어쨌든 나라에서 하는 어떤 일이든 돈 때문에 결코 불이익을 받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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