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교육지구 꽃다지 [3]우리동네 어벤저스
행복교육지구 꽃다지 [3]우리동네 어벤저스
  • 김성찬
  • 승인 2023.07.19 2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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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행복교육지구] <1>온 마을이 배움터
[행복교육지구] <2>마을이 키우는 우리 아이
[행복교육지구] <3>공동체 힘으로 지역 살린다
[행복교육지구] <4>행복마을학교에는 행복이 산다

지역소멸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청년들이 농어촌을 떠나면서 시골인구는 눈에 띄게 줄었고,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역시 마을을 떠난 지 오래다. 그런데 여기 멋진 ‘역주행’을 보여주는 곳들이 있다. 교정을 넘어 마을 지킴이까지 자처하고 나선 ‘우리동네 어벤저스’들을 만나보자.
 
세종고 아이들은 홀몸어르신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모금활동을 진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서로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ROPE, 밧줄)의 팔찌를 제작해 판매했고, 그 수익 전액을 홀몸어르신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밀양 세종고등학교=세종고의 아이들은 남다르다. 어른들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한 마을과 지역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학생동아리가 중심이 돼 지역문제해결 프로젝트를 실행하는가하면 그럴듯한 정책 제안서까지 만들어 낸다.

3년 전. 아이들은 홀몸 어르신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태양 LED 가로등을 설치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각 동네 ‘어둠 지도’를 만들기 위해 골목골목을 누비며 골목길 별로 조도(룩스, lux) 수치를 조사한 다음 ‘양호-보통-심각’으로 분류했다. 취약지역 가정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보충해 최종 설치 장소를 결정했다. 태양광 LED를 직접 구매하고, 꼼꼼한 설치까지 손수 마쳤다. 이같은 아이들의 열정은 국내 한 방송사의 전파를 탈 만큼 인상적이었다. 시작이 근사했다.

탄력을 받은 아이들은 동네 ‘가로수 지도’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발품을 팔아 동네를 직접 돌며 가로수의 위치를 파악하고, 사진을 찍고, 이름표를 만들어 달았다. 이름표에는 수종과 식재시기, 나무정보,나무가 아플 때 전화할 수 있는 연락처 등을 담았다. 덕분에 동네 가로수들은 ‘초록이’, ‘샛별이’ 같은 이름을 얻을 수 있었고, 또 그만큼 주민들의 애착을 덤으로 얻었다. 아이들은 가기치기 기준이나 뿌리양육 환경 보장 등의 내용을 담은 ‘도시숲 조례 개정안’을 밀양시에 직접 제안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홀몸 어르신을 돕자고 의기투합한 아이들은 기부팔찌를 판매해 보기로 했다. 국세청에 문의한 결과 판매가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시청의 도움을 받아 ‘밀양시 평생학습축제’ 기간에 부스를 운영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행사는 취소돼 버렸다. 상심할 시간도 아까운 아이들이었다. 곧바로 학교 학생회가 주최한 ‘운동장 영화제’에 전을 펴고 기부금 모금행사를 진행했다. 반응은 예상 외로 뜨거웠다. 행사 후에도 SNS를 통해 기부 문의가 이어졌다. 아이들은 연말까지 모금활동을 진행해 모은 돈을 밀양시청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세종고 아이들은 전동휠체어 빛반사 스티커 부착과 같은 장애인을 위한 ‘어깨동무 합시다’ 캠페인을 펼치는가 하면 쓰레기통으로 전락한 동네 하수구 정화를 위한 ‘밀양 툰베리’ 캠페인(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이름에서 착안)을 벌이기도 했다. 이 뿐인가. 지난해 5월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나 2018년 수많은 사상자를 낸 세종병원 화재사고 때는 산림청과 시청을 대상으로 정책 제안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참 대견한 아이들이다. 세종고 사회참여동아리에서 회장 직을 맡고 있는 한준기 학생의 바람은 이렇다.

“올해는 어쩌면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우리 동네의 이웃 간 교류를 활성화 해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요. 그동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함께 고민하면 더 나은 해결방법이 나온다는 것을 저희들은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지역의 문제점을 살피고, 최선의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우리동네 어벤저스’가 되고 싶습니다.”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고현초와 도마초는 교육공동체(교직원, 학생, 학부모)와 온 면민이 힘을 모아 학교 살리기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학교에는 활기가 돌았고 동네에는 활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남해 고현초등학교=남해군의 작은 마을 고현면과 그 속의 고현초등학교의 모습은 3년 전과 견주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24명이던 학생은 54명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학교에 활기가 생기니 동네엔 활력이 돌았다. 마을은 66가구 300여명의 새얼굴을 주민으로 맞았다. 이유가 뭘까?

다시 3년 전. 고현초 교사와 학생, 학부모와 지역민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갈수록 쪼그라들어만 가는 학교를 한번 살려보기 위해서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던가. 그렇게 고현초는 인근의 도마초등학교와 함께 손을 잡고 ‘작은학교 살리기’에 전부를 걸었다. 학생수 급감으로 두 학교 모두 정상적인 교육과정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이른바 ‘공동교육과정’. 두 학교의 학부모들은 마을교육플랫폼인 ‘멀구슬과 버리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의 ‘첫 발’은 학교에서부터 시작됐다.

 
2021년 7월 여름방학. 고현초의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지역 전문가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가며 학교 건물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고사리같은 아이들의 손길 덕에 학교는 금세 화사하게 변했다.
이후 이들의 발걸음은 놀라웠다. 옮기는 걸음마다 변화의 싹이 텄다. 두 마을 아빠들의 모임 활성화를 위해 목공방 동아리 ‘우드락’이 만들어졌고, 집수리 봉사단 ‘두리하나’도 조직돼 동네에 이사오는 가정에 작은 도움이 됐다. 동네사람들은 마을교육공동체를 더 잘 이해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교수님들을 모셔와 강의도 들었고, 더 나은 마을교육 운영사례를 배우려 전라남도까지 찾아가 그들의 노하우를 익혔다. 아이들은 학교와 배움터에서 배운 춤과 가야금 연주로 동네 어르신들을 즐겁해 했고, 학교 콘크리트 벽을 화사하게 꾸미는 벽화그리기 작업에도 작고 여린 고사리손을 얹었다.

이러한 만남과 소통, 배움과 나눔은 작고 보잘것 없었던 고현을 ‘찾아오고 싶은 학교’와 ‘머물고 싶은 마을’로 탈바꿈 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동네의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 온 마을이 힘을 모은 모범사례가 되기에 충분했다. 누가 봐도 그랬다.
김성찬기자 kims@gnnews.co.kr

 
고현초와 도마초의 학부모 집수리 봉사단 ‘두리하나’는 지역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가정을 위해 빈집 수리에 도움을 주는 학부모 봉사단체다. 봉사단 활동에는 마을 이장과 지역업체(전기, 시설 등)도 함께 참여해 힘을 보탠다. 이게 다 지역과 학교를 살리기 위한 노력들이다.
김수경 거제둔덕중학교 학부모회장
[인터뷰] 김수경 거제 둔덕중학교 학부모회장

거제 둔덕중학교 역시 농어촌 인구 급감이라는 파도를 넘지 못했다. 한때 학생수 급감으로 폐교 위기까지 몰렸던 학교는 2020년 학교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마을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경남교육청 협력형마을학교 사업을 시작으로 학교와 지역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매년 30명이 넘는 마을교사를 초빙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열어 아이들의 방과후와 주말, 방학을 채워나갔다. 당장 학생수를 늘리기 보다 아이들과 교직원, 주민이 하나된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지역 특색이 투영된 특색있는 교육과정을 만들어내는데 힘을 쏟았다. 결과는 만족 이상이었다. 지난해에는 교육부가 선정한 ‘농어촌 참좋은 작은학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학교는 현재 ‘마을에 대한, 마을을 통한, 마을을 위한 교육’을 목표로 다양한 마을 연계 교육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의 누구나 우리 아이를 키우는 마을배움터 활동은 우리 삶과 연결된 배움을 주는 또다른 하나의 학교입니다. 마을교사 6년차 수업을 하면서 학교의 성장이 바로 지역의 발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학생 수가 증가함에 따라 마을배움터의 역할이 크다고 여겨졌어요. 학생수가 27명까지 줄어 폐교 위기에 놓였던 학교가 지금은 어느덧 94명으로 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마을 속에서 더 많은 활동으로 꿈과 재능을 찾아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집안 3대가 다닌 둔덕중학교, 언젠가 저의 손자와 손녀도 이 학교를 다니는 날을 상상하면 웃음이 절로 납니다.”

김성찬기자 kims@gnnews.co.kr


 
함안 함성중학교에서는 학교와 마을이 만나 전통 벼농사를 매개로 노동과 생태에 대한 가치를 온몸으로 익히는 배움과 나눔이 동시에 이뤄진다. 아이들은 마을배움터를 통해 전통 모찌기와 모내기 활동에 직접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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