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많은 이곳, 구치소 전시회는 처음이지?
사연많은 이곳, 구치소 전시회는 처음이지?
  • 백지영
  • 승인 2023.07.19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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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아 협동조합 ‘텔레파시’展 
옛 창원지법 진주지원 구치소 건물
“영감 주는 공간…2년 만에 전시 성사”
진주·통영 작가 7인, 시민과 함께
사람 한 명 몸을 누이면 끝나는 답답한 독방. 쇠창살 넘어 보이는 유리창에는 ‘정서 교화’용 촌스러운 꽃 사진이 붙어있고, 벽에는 ‘진실은 당신만이 알고 있다’ 같은 의미심장한 낙서가 남아 있는 곳. 이름은 익숙하지만 막상 방문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은 베일 속 공간, 구치소.

최근 진주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밝은 조명 등 쾌적하고 손쉽게 빌릴 수 있는 전시 공간을 뒤로 하고, 지역작가들이 오랜 노력 끝에 낡고 불편한 옛 구치소 건물을 무대로 전시회에 나서 눈길을 끈다.

진주시 상대동 옛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구치소 건물에서 지난 15일부터 열리고 있는 ‘2023 텔레파시’展 이야기다. 진주지역 예술단체 ‘카나리아 협동조합’이 주관하는 전시로, 진주시가 후원하고 진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가 후원한다.

전시에는 김상효, 김희준, 박진영, 성인화, 이효진, 조영아, 하지혜 등 진주와 통영에서 활동 중인 기성 작가 7명과 예술에 호기심을 품은 시민 작가 11명이 함께 참여해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를 개막한 지난 15일 첫 도슨트(전시 안내) 시간에 맞춰 찾은 ‘텔레파시’展은 낯섦과 흥미로움이 공존하는 이세계였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대부분의 작품을 자연광에 의존에 감상해야 했고 더위나 묵은 먼지, 삐걱거리는 마루 등 불편함 투성이었지만 이를 감내하고 한참 작품을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으로 가득했다.

구치소 앞에 위치한 옛 법원 건물이 ‘지역 혁신 청년 센터’라는 말끔한 옷을 입은 것과 달리, 그 뒤로 숨겨진 구치소 건물은 곁에 나붙은 현수막이 없었더라면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듯한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2개 층으로 구성된 구치소 건물로 들어서면 ‘사랑’, ‘평화’, ‘감사’ 등으로 명명된 수용실을 저마다 배정받은 작가들이 ‘텔레파시’를 주제로 펼쳐 보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1층 수용실에서 바로 위 2층 수용실로 이어지는 설치 미술. ‘낙서 금지’라고 인쇄된 코팅지를 말끔히 무시하고 벽에 하얀 페인트를 무질서하게 바른 뒤 온갖 단어를 써넣은 공간. 구치소 창문틀을 활용해 만든 액자에 담은 실크스크린 작품…. 평소 보기 힘든 이색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은 쇠창살 안팎을 오가며 연신 질문을 쏟아냈다.

법원 이전 후 10년가량 방치돼 온 구치소 건물에서 전시가 펼쳐지게 된 것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시를 기획한 이효진 카나리아협동조합 대표는 “구치소 앞 법원 건물에 들어온 혁신센터에 전시나 미술 교육 등을 위해 방문할 일이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뒤에 방치 중인 구치소 건물을 보고 무수한 영감이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장소 섭외는 쉽지 않았다. 당시 건물을 소유했던 기획재정부 문을 두드렸고, 담당자가 진주를 찾는 등 진척이 되는 듯했지만 무산됐다. 이후 건물이 한국자산관리공사로 넘어가자 다시 의사를 타진했지만 역시 무위로 그쳤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최근 진주도시재생지원센터가 자산관리공사로부터 건물을 10년 임대 계약하면서부터다.

이 대표는 “센터가 구치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내년에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예정이라고 들었다”며 “그 전에 옛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공간에서 꼭 전시를 하고 싶어 다시 시도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성공했다”고 밝혔다.

구치소라는 공간이 주는 영감에 매료된 작가들을 섭외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조합 소속 진주 작가들과, 평소 자주 교류해 온 통영 청년 작가들이 흔쾌히 참여했다. 오랜 시간의 흔적과 이야기를 그대로 간직한 공간이 새로운 옷을 입기 전, 예술가들의 방식으로 아카이빙에 나섰다.

강한 폐쇄성을 지닌 구치소 건물에서 소통, 공감, 교감 등 의미를 지닌 ‘텔레파시’라는 주제로 작가마다 저마다의 작품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소통에 나선 것.

이효진 대표는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텔레파시를 보내고, 관람자들은 다양한 해석으로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며 “작가들이 보내는 ‘텔레파시’가 많은 이들에게 강력하게 전송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전시는 8월 15일까지 이어진다. 7월 22일과 29일, 8월 5일에는 하루 3차례씩 도슨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도슨트는 오후 1시·2시·3시에 각각 시작해 30분가량 진행되며, 사전에 카나리아협동조합(010-4859-2750)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무료 전시.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하지혜 작가의 공간.
 
조영아 작가 공간.
조영아 작가 공간.
조영아 작가 공간.
조영아 작가 공간.
개막일 오전 이곳에서 자신들이 그린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작가들.
개막일인 지난 15일 오후 전시에 참여한 시민작가들이 이날 자신들이 즉석에서 완성한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전시 안내를 맡은 김희준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
전시 안내를 맡은 김희준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
성인화 작가 작품.
성인화 작가 작품.
김상효 작가 공간.
김상효 작가 공간.
김상효 작가 공간.
김상효 작가 공간.
박진영 작가 공간.
박진영 작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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