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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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3.07.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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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한국시인협회 올해 사화집 ‘境界’에 실린 경남의 10인(4)
‘境界’에 실린 경남 출신 다음 차례는 김추인이다. 김추인은 함양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다. 다음 198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이것이 알려진 약력이다. 필자에게 그의 이미지는 지리산문학관에 걸린 함양 출생 시인의 제법 커다란 사진 액자로 시작된다. 아마도 진주의 ‘이형기문학제’에 다녀간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필자는 산청, 진주 곁에 있는 함양이나 하동, 그리고 합천 출신일 때는 무슨 면 어느 지역 쪽에서 태어났는지 궁금해진다. 함양이면 허영자처럼 휴천면 아니면 유림면인가, 하동이면 정공채의 고전면이나 이병주의 북천면이면 좋겠다거나 합천이면 이주홍 고향인 합천읍 끝자락 해인사 나들목이나 박태일의 악견산(작품 제목) 정도면 좋겠다거나 하는 짐작과 예측의 지점이 있다. 김추인의 그 지점은 오리무중, 교감도 약한 편이다.

‘경계’에 실린 시는 ‘여러분의 노화를 책임집니다- 불알시계 白’이다.

“옆구리에 키를 꽂아 태엽을 몇 바퀴 감아주자/ 그가 반짝 눈을 뜬다// 착-각, 착-각/ 긴 진자가 걷기를 시작한다/ 꽁무니 바싹 붙어 걷는 우리 자면서도 달리는”

시계추가 흔들리도록 하는 장치는 태엽 감기에 있다. 오늘날 인간 수명 연장이 태엽처럼 감기로 가능한 것일까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를 시인은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 친구의 메일이 닿아 있다. “낡은 DNA에 나비의 날개를 다는 중” 의학의 발달로 DNA의 개량까지를 생각하는 시대의 갈증을 암시하고 있다. 인공생명과 그 한계 또는 경계에 와 있는 오늘 노령사회의 아픔이 더 깊은 쪽에서 일고 있는 것에 대해 시인은 스치며라도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 시인은 거창 출신 신달자이다.

그는 숙명여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학위를 받았고 ‘현대문학’에서 박목월의 시 추천을 받았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거치고 등단 60년에 17권째 시집을 발간했다. 그는 구상, 구중서 등과 가톨릭신문 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으로 일해 왔다. 시집에는 ‘봉헌문자’, ‘종이’, ‘북촌’ 등이 있다. ‘境界’에 낸 시는 ‘마음 농사’이다.

“마음 그 안에는 내가 흐르고 파도치는 바다가 흐르고/ 계곡이 흐르고 때론 화산이 터지기도 하지요/ 불의 파도가 마귀처럼 쏟아지는/ 그 한가운데는 뾰족산이 시퍼렇게 서 있고요//…(중략) 그 불의 정상이 무너지고 나면/ 마음은 더없이 넓어지겠지요/ 내도 바다도 사라지고 뾰족산도 사라지고/ 넓은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마음 농사는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우뚝 솟은 산을 부드러운 모래동산으로 다듬는 것이지요”

마음의 농사는 인간 내면의 바다, 화산, 계곡, 뾰족산 등이 다듬어지는 세월일 터이다. 나중에 그것들이 부드러운 모래동산으로 경계를 지울 것이다. 그 불손한 모든 경계를 다듬고 나면 탁! 하고 날아오르는 천재가 되는 것일까? 마음의 농사는 그 모든 경계를 지우고 지우는 농경인 셈이다.

신달자 시인은 시인 중에서 강연팀에 속하여 전국 각지를 돌며 순회강연 멤버로 뛰기도 했다. 한 번은 소설가 이병주와 한 조가 되어 전국을 돌았는데 강연에는 시작할 때만 나란히 앉아서 모습을 보였으나, 마치는 시간에는 간섭하지 않고 바로 떠나겠다는 연사가 이병주였다. 가는 데마다 술집 수금원을 피해 가는 건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고 그 뒤 그 상황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든 이병주의 주유천하는 실로 경계가 없었고 어떤 경우는 그 나름의 강연 내용에서조차 줄거리의 경계를 알아차리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신달자 시인은 20여년 전 경상국립대학교 여성지도자 과정에서 초청을 받아 가좌동 대형 강의실에서 강의를 했는데 그때도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의 강의는 가족사를 끌고 오기도 하고 문인 생활에서 지나갔던 에피소드들을 가리지 않고 끌어오기도 했다. 이때 만난 수강생이 나중에 시인이 되고 시집을 내었을 때 해설로 격려를 해주었다. 그러자 초빙교수와 수강생의 경계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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