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엇박자 대학통합이 만들어 낸 불량 톱니바퀴
[경일포럼]엇박자 대학통합이 만들어 낸 불량 톱니바퀴
  • 경남일보
  • 승인 2023.07.2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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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술 경상국립대 교수
윤창술 경상국립대 교수


몇 년 전의 경상대와 경남과기대 통합은 억지스러웠다. 통합의 당위성도 부족했거니와 그 성사에 목적을 두느라 세부적인 조정마저 미흡했다. 반면에 최근 경상국립대와 창원대의 경우 통합의 당위성은 있었지만 조용하게 무산됐다. 두 가지 현상은 글로컬대학30 사업 진행 과정에서, 톱니바퀴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그 톱니바퀴가 들어간 물건 전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글로컬대학30 예비지정에서 대학 간 통합모델을 제시한 대학은 강원대·강릉원주대, 부산대·부산교대, 안동대·경북도립대, 충북대·한국교통대 4곳이다. 경남도는 도내 1개 대학 정도만 글로컬대학에 선정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통합 경상국립대-창원대’를 가장 유력한 후보로 상정한 적이 있었다. 제대로 된 진단을 통한 바람직한 대응이었지만 그 구상은 무산되었다. 결국 도토리 키재기 경쟁 상황이 돼버렸으며, 경상국립대와 경남과기대의 지난 통합이 추인지원을 받는 형식이 되었다. 예비지정된 15개 중 10개로 압축되는 본 지정 절차가 남아 있어 경남의 경상국립대와 인제대가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만약 몇 년 전에 경상대와 경남과기대의 어중잽이 통합이 강행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당시 ‘자칫 서두르다 보면 무리가 따르니 국립대학의 통합정책에 대한 교육부의 큰 그림이 나올 때까지 연합 과정을 거치자’라는 일부 구성원의 제안을 통합 추진 주최측이 받아들였다면 말이다. ‘임금의 잘못된 판단으로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혔다’라는 영화 남한산성의 대사처럼 경남과기대 소속 학과들과 구성원의 운명을 스스로 조급하게 가두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 당시 대안으로 제시된 ‘연합’ 과정을 거쳤다면 부드럽게 다진 두 대학 구성원의 화학적 융합 결과를 바탕으로 글로컬대학30의 선정 과정에서 더 유리했을 것이다. 예비지정은 물론 본지정의 무난한 통과로 지원금 받으면서 기분 좋게 통합을 진행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면 창원대도 통합대열에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경로의존성’이라는 용어가 있다.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면 그 선택 이후의 길을 크게 좌우하고 이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몇 년 전 경남과기대의 통합 추진 주최측은 ‘구성원이 올바른 선택을 하면 된다’고 강조했지만 절대 다수의 동의 없이 급하게 통합을 밀어붙인 결과의 후유증이 이번에 또 드러난 셈이다. 반면에 이번 글로컬대학30과 관련해선 경상국립대와 창원대의 통합이 무산됨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손실 또한 클 것 같다. 논어 학이(學而)편에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고 했다. ‘잘못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은 당연히 고쳐야 한다.

‘서울대 수준의 지방대학 10개 만들기’가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도 한다. 경남도내 국공립대학 간의 ‘연합을 거치는 통합’으로 캠퍼스별 특성화가 되었을 때 그 실현 가능성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예비지정된 충북대·한국교통대의 핵심 방향은 ‘공유-연합-통합’ 시너지 극대화를 통해 대학, 지자체, 산업체 간 공유 협업을 통합 관리하는 혁신 플랫폼 대학 구축이다. 또한 강원대·강릉원주대의 핵심 또한 1도1국립대 구축을 통한 지역밀착형 캠퍼스 구현이다.

경상국립대는 지역거점국립대로서 거시적 접근으로 경남 전체를 아우르는 작업을, 인제대는 김해를 거점으로 미시적 접근을 할 때 경남 전체의 시너지 효과가 높아질 것이다. 지역거점국립대인 경상국립대는 어떤 방식이든 ‘연합-통합’ 형식의 1도1국공립대 체제를 담도록 주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1도1국공립대 구축의 목표는 대학 크기를 키우거나 줄이는 게 아니라 지역별 특성에 맞게 각 대학 캠퍼스의 장점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공립대 ‘연합’ 네트워크의 경우 각 캠퍼스의 총장직은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큰 걸림돌 하나는 없는 셈이다.

지금부터라도 톱니바퀴를 제대로 만들어서 ‘잘못된 판단으로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혔다’라는 영화 남한산성의 대사를 더 이상 등장시키지 않게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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