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언 창원총국
행정기본법 제12조는 ‘신뢰보호의 원칙’을 명문화하고 있다. 행정기관은 공익 또는 제3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정에 대한 국민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신뢰를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행정기관이 명백한 사유없이 선행행위와 다른 후행행위를 할 경우 ‘권한남용’에 해당된다. 최근 김해시가 풍유동 물류단지조성 사업을 두고 갈팡지팡하는 모습을 보면 신뢰보호의 원칙에 입각한 행정을 하는지 의문이 든다. 여기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행정도 답답하다. 김해시는 지난 20여 년간 끌어온 풍유동 물류단지조성 사업의 최종 승인을 앞두고 뜬금없이 아파트를 짓는 도시개발사업으로 전환하려는 뜻을 보였다. 그것도 홍태용 시장이 직접 지주들에게 물류단지 대신 도시개발사업 의사를 타진했다.
이 소식에 대다수 지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긴 세월 우여곡절을 겪은 지주들은 2021년 12월 새로 지정된 사업자로부터 보상금 일부로 계약금을 받았다. 그리고 최종 승인이 나면 80%에 달하는 중도금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도시개발사업으로 전환되면 지주들은 계약금 반환은 물론 사업 완료 때까지 또 하세월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사업자 역시 반발하고 있다. 김해시와 경남도의 행정절차를 모두 거쳤고, 특히 김해시가 요구한 공공기여분 토지를 당초 6611㎡에서 3배인 1만 9834㎡까지 내놓았지만 김해시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법상 물류단지 조성사업 승인은 경남도가 김해시와 협의 후 결정한다. 그러나 도시개발사업은 김해시가 승인권자다. 김해시는 사업지가 서김해IC와 인접한 김해 관문인 데다 장유지역과 연결하는 통로인 만큼 대형 창고보다는 아파트가 도시 미관과 기능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김해시의 설명도 납득할만 하다. 그러나 결정 시기가 너무 늦었다. 도시개발사업을 하려면 이전에 했어야했다. 시간도 충분했다. 주요 행정절차 8가지 중 6가지가 홍태용 시장이 취임한 지난해 7월 이후 진행됐다. 진행률은 95%로 경남도의 최종 승인만 남았다. 사업자는 물류단지 대신 도시개발사업으로 전환하면 수백억 원대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소송이 진행되면 법원이 최종 판단을 하겠지만 경남도나 김해시가 신뢰보호의 원칙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홍태용 시장은 취임하면서 첫 번째 시정 운영 철학을 ‘소통’으로 정하고 ‘꿈이 이루어지는 따뜻한 행복도시 김해’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홍 시장이 최근 보이는 행보는 20여 년을 기다려온 풍유동 지주들에게 더 긴 인내를 요구할 뿐 그들의 꿈 실현과는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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