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작년에 처음으로 지팡이 대신 휠체어를 타고 유럽 여행에 나섰다. 그리고는 50여 년 만에 비로소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깔끔하게 인정했다. 휠체어에 탄 세상은 또 달랐다. 청각, 지체, 시각 등 각각의 장애가 체험하는 어려움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경험들이 모두가 장애 없이 편하게 여행을 만끽할 수 있는 무장애 여행에 대한 그의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리산 아래에서 펜션을 하고 계시는데 무장애 여행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지리산이 좋아 지금 살고 있는 함양군 마천면에서만 20년 이상 거주하고 있어요. 원래 서울이 고향인데 여행을 좋아해 여기저기 훌쩍 여행을 떠나곤 합니다. 10여 년 전부터는 캠핑카를 만들고 커피를 팔면서 전국을 돌아 다녔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지금 다니는 여행사의 대표를 만나 무장애 여행 상품 개발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 거죠. 돌아보면 장애를 가진 분들도 하고 싶은게 많지만 여러 여건상 할 수가 없는 그런 억압 당하는 현실이 크게 다가와요. 여행도 마찬가지이죠. 그래서 제가 가진 생각과 느낌을 무장애 여행 프로그램에 녹아 내릴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기획했던 무장애 여행 프로그램을 소개한다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여행자 할인 사업을 시행했는데, 장애인은 100%, 일반인은 50% 지원을 하는 사업이에요. 이를 활용해 장애인과 가족을 동반해 1박2일 동안 함께하는 ‘폴링 인 진주 진주성 호롱불 밤마실’이라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처음 시도한 무장애 여행 상품이었지만 한번 진행할 때마다 장애인분들이 10여 명 안팎으로 꾸준히 동참했어요. 프로그램 전체를 따져보면 전국에서 장애인분들이 100여 명 넘게 참가했으니 첫 시도치곤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왜 진주에서, 호롱불 밤마실이라는 주제를 선택했는지.
▲저녁의 진주는 낮보다 훨씬 아름다워요. 거기에다 진주성은 역사라는 스토리가 있고 비단의 명산지이잖아요.. 문화해설사와 함께 비단으로 만든 호롱불을 들고 진주성 곳곳을 돌면서 탐방하는 일정이 참가자 분들에게는 남다른 경험이 될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진주성 투어 일정을 마치면 정갈하게 만들어진 차와 다식을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는데 그곳에서 지역의 뮤지션이나 스토리가 있는 분들이 진행하는 문화공연을 다함께 즐기는 것이 프로그램의 백미입니다.
사실 거동이 불편하면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것마저도 특별한 일이 될 수 있잖아요. 공연을 보는 것은 더욱 제약이 따르는 일이죠. 그래서 진주성에서 봉사자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잠깐이지만 편안하게 문화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겁니다.
-여행을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한데요.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면 많이 찾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현실은 좀 달랐어요. 가족들이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행사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장애인협회나 시설, 단체 등에 따로 공문도 보내고 홍보도 많이 했지만, 그분들 입장에서 보면 일이 더해지는 거였어요.
그럼에도 참가한 분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제게는 너무나 기분 좋은 일입니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야죠.
-무장애 여행이 활성화 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작년에 공모사업을 통해 진주의 혁신도시에서 장애공감 체험을 진행한 적 있는데 그런 기획을 했던 건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씩 바꿔 나가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미국에 여행을 갔을 때 ‘여기 사람들은 마인드 자체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장애인도 그저 관광객의 한 사람으로 차를 빌릴 때도 미국 곳곳을 여행을 하는 동안 불편하다는 점을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어느 여행지에 도착해서 장애인 편의시설이나 준비가 부실하다면 그건 자기들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해결해 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참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솔직히 미국에서의 여행은 그냥 편했어요. 그런 미국도 그런 상황까지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개선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건데, 우리도 그런 사회적인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변화가 필요한 사회라는 점이 많이 공감되는데, 무장애 여행에 대해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면?
▲장애는 육체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요. 무장애 여행이 필요하거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욱 많아지고 있다고 보거든요. 청각이나 시각 등 거동이 불편한 장애가 있어 선뜻 여행에 나서지 못하는 분들부터 고령화 시대를 맞아 고령층이나 임산부를 비롯해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들까지, 그런 분들을 배려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 시대가 온 거에요.
적절한 장치와 상품이 있으면 비용을 지불하고 한번 세상 속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요? 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여행의 질이 좀 더 높아야 하고 언제든 마음껏 떠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스페인 세비아 대성당에서 스페인광장까지 휠체어를 타고 달렸는데 문득 세비야에서 장애인분들과 보름살기를 한번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봤어요. 그런 여행을 자유롭게 해보는게 제 꿈이자 목표에요.
한달살기, 워케이션이 유행이다. 잠깐 다녀오는 관광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트랜드로 관광이 바뀌고 있다. 경남 지자체들도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이제는 자연스레 홍보한다. 시골 빈집에 머물며 동네를 홍보하기, 섬에서 생활하며 재택근무를 이어가기, 거주지를 떠나 다른 곳에서 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하기 등등 다양한 기획들이 마련되고 있다. 머무는 관광상품은 일상적인 소비생활로 이어져 해당 지역경제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노약자라, 장애인이라 잠깐의 여행도 어렵다지만 훌쩍 떠나 색다른 곳에 머물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욕구다. 모두에게 편리한 무장애 여행이 앞으로의 관광산업에서 기준이 되는 상상은 나쁘지 않다.
임명진기자·김지원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