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맥주홀작민루낙(麥酒忽酌民淚落)
[경일포럼]맥주홀작민루낙(麥酒忽酌民淚落)
  • 경남일보
  • 승인 2023.07.2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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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2023년 3월 16일 한일정상회담을 마치고 일본 도쿄 긴자의 128년 된 오므라이스 노포인 렌가테이(煉瓦亭)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생맥주로 건배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서 춘향전의 주인공인 이몽룡이 쓴 ‘촉루낙시민루낙(燭淚落時民淚落)’을 생각했다. 건배를 하면서 술을 한 번에 다 마시는 걸 보고 기시다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12년 만에 가진 한일 정상회담을 하느라고 목이 말랐을 것이다. 요즘 한시 공부를 하는 중이어서 대통령이 맥주를 마실 때 우리 국민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는 뜻으로 글자를 바꾸어 보기로 했다.

읽기 쉽도록 ‘맥주홀작민루낙(麥酒忽酌民淚落)’으로 글자 몇 개를 바꿨다가 가벼운 느낌이어서 다시 ‘맥주유시백성명(麥酒遊時百姓鳴)’으로 했다. 그런데 ‘울 명(鳴)’이 아니라 ‘기쁠 환(歡)’자를 지지하는 분도 있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잘못을 하긴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새시대를 열자는 마음인 것 같다. 그러나 아무런 사과도 없는데 먼저 새시대를 이야기 하는 건 순서가 아니다. 문제는 일본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적반하장으로 자기네들 덕분에 우리가 잘살게 되었다고 한다. 철도와 신작로도 만들어 주었고, 공장과 농지도 만들어 주었으니 고마워해야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건 쌀과 광물을 수탈하기 위해 육로와 해로를 만들면서 우리 국토를 철저히 유린한 것이다. 사월혁명회는 지난 4월 19일, 윤석열 정부를 친일매국 정권이라고 했다. 우리도 ‘환’자도 평성이니 한시를 짓는 원칙에는 어긋나지 않지만 ‘울 명(鳴)’자 대신에 ‘기쁠 환(歡)’자를 써서 ‘맥주유시백성환(麥酒遊時百姓歡)’이라고 하면 안된다.

지난 2018년 10월 신일본제철 강제징용 피해자 인당 1억원을 지불하라는 우리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비록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이 있긴 하지만 그건 일본 식민통치의 불법성에 관해 양국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한 것이므로 당사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관계의 새 시대를 연다면서 일본에게 고개를 숙이고, 전범기업이 강제징용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했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에 대해 의례적인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기시다 총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를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 부르며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부정했다. 이 회담에서 기시다 총리는, 굴러들어오는 복을 가만히 앉아서 받아들였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본 울산작가회의 정소슬은 시 ‘친일이 어때서’에서 ‘日 후작, 리노이에 칸요(李家完用, 이완용)가 어때서/ 日 귀족, 오오타니 마사오(大谷正雄, 정인각)가 어때서/ 日군 소위,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박정희)가 어때서// ……/ 미래로 가자는 자발적 복종이 어때서/ 내 영역 보호 위한 삼배구고두례 치욕쯤이야/ 어때서 어때서’라고 한다.

지금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3개월 전인 4월 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후문 앞에서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인 김성주 할머니가 특별현금화 명령 재항고심 사건에 대한 판결을 빨리 진행하라는 기자회견을 했다.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 등에서 압류한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를 진행해달라는 요구였다. 1945년 2월 일본 도야마현에 있는 후지코시 철재공업주식회사 도야마공장에 동원돼 강제노역을 한 나화자 할머니는 후지코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 대법원의 마지막 판결을 기다리다가 4월 19일 별세했다. 향년 91세다. 4월 20일 현재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소송 원고 23명 중 14명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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