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사람을 옹호하라
[여성칼럼]사람을 옹호하라
  • 경남일보
  • 승인 2023.07.2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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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폭우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안타까운 뉴스 속에서 또 한 명의 죽음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20살 해병대 청년이 구명조끼 없이 실종자 수색에 나갔다가 물살에 휩쓸려 운명을 달리했다. 부모가 10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은 분단국가에서 국민의 의무를 다하다가 죽었다. 또 하나의 부고를 들었다. 20대 초임 교사가 자신의 일터인 학교에서 죽었다. 부모에게 공부 잘하고 똑똑한 딸은 일터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죽은 이유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는 동안 추측성 기사가 나돌고 있고,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추모의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

두 청년의 죽음은 전혀 다른 일인 것 같지만 닿아 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사람을 옹호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구조가 전문이 아닌 군인을 구명조끼 없이 내보낸 군대는 군인을 사람으로 존중하고 있는가? 초등교사가 내몰린 과도한 행정업무와 비상식적인 부모 민원응대 등의 노동환경이 개인적으로 돌파할 수 있는 상황인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구조이다. 군대, 학교라는 구조에서 사람으로 존엄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돼 있는지 분석하고 문제점을 개선해 가야 한다. 정부가 갈등 당사자들의 문제로만 부각하며 유체이탈 화법으로 뒷짐을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사회는 인간이 물질화, 수단화돼 굴욕을 당하지 않도록 법과 사회보장 등으로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군대니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여기며 함구하고 있다. 분단시대 과잉된 남성성의 극단인 ‘해병대 군인’은 못하는 것이 없어야 했기에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초등교사의 죽음의 원인은 학교라는 노동 현장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며칠사이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교권과 아동권을 갈등의 핵심으로 지목하고, 학생인권조례가 그 원인이라며 개정 및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교사의 인권과 아동의 인권은 제로섬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학급에서 명확한 권력관계이다. 아동은 많은 부분 약자이기에 평등을 위해 더 구제하고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이 옳다.

반면 부모와 교사는 평등한 관계이다. ‘부모 갑질’이라는 명명 자체는 갑을 관계를 설정하며, 근원적으로 교사와 부모가 교육의 3주체로서 협력하는 관계라는 것을 지워버린다. 물론 비상식적인 부모의 민원 행위는 큰 문제이다. 교사가 학급에서 아동학대와 훈육을 구별해내지 못하는 부모를 상대해야 하는 일은 버겁다.

학교조직에서 아무도 방패막을 해주지 않는 현실은 교사를 더 고립시킨다. 그렇지만 자극적인 사례의 열거는 부모와 교사를 대치하며 이 노동 현장의 최종 책임과 원인 규명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한다. 비상식적인 악성 부모만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교사가 심리적으로 취약해서, 행정력이 부족해서 등등 개인의 문제로 원인을 돌리기 쉽다. 기실 사람들은 아동학대와 훈육의 개념과 그 단계, 정도를 진지하게 고찰한 경험이 많이 없다.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말을 상기해보자. 사람을 도구로만 보고 있는 삶의 현장들을 마주하며 사람의 존엄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 자체가 자유를 침해당한 것이며, 자유 없는 이의 선택은 선택으로서 의미를 잃었다.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내몰림이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시민으로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정치적 책임이란 선의에 머무는 도덕적 태도가 아니라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시행한 정치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일반 시민이 지는 책임이다. 우리가 속한 제도가 부정의한 것이 있다면 다른 이들을 동원해 그 제도에 반대해야 하고 반대의사를 드러내야 할 정치적 책임이 있다. 그리고 제도를 변화시켜 더 나은 결말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함께 행동해야 한다. 무엇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 구조를 마주해, 성찰하고 함께 행동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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