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가
[현장칼럼]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가
  • 문병기
  • 승인 2023.08.01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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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서부취재본부장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맘이 다르다’는 속담이 있다. 급하거나 필요할 땐 뭐든 해줄 것처럼 하고, 끝난 뒤에는 나 몰라라 한다는 뜻일 것이다.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인간의 이중성과 심리를 가장 잘 함축한 말이 아닐까 한다. 최근 사천비행장을 끼고 사는 주민들은 이 속담이 가슴에 와 닿는다. 목적 달성을 위해 감언이설을 내뱉고,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자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KF-21 시험비행 관련 기관들의 행태와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정부를 믿었고, 군을 믿었으며, 제조사를 믿었기에 그들의 약속을 신뢰했다. 시험비행을 통해 자주국방과 세계 8번 째 초음속 전투기 개발 국가로 우뚝 서 국민의 자존심과 국가적 위상을 드높인다기에 그런줄 알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막을 찢는 굉음으로 생활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참고 또 참았다. 그게 국가와 국익을 위한 길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이들은 주민과의 신뢰를 헌신짝 버리듯했다. 시험비행을 앞두고는 뭐든 다 할 것처럼 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KF-21은 지난해 7월 19일 시제 1호기가 첫 시험비행에 나섰다. 지난 6월 28일 마지막 시제기인 6호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하면서 순조로운 진행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500여 회 시험비행을 완료했다. 2026년 6월까지 2200여 회 정도 시험비행에 나설 예정이니 1700여회의 비행이 남아 있다. 주민들은 그만큼의 고통을 더 견뎌야 한다는 뜻이다.

시험비행은 맑은 대신 소음 피해 대책은 악천후나 다름없다.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들을 믿고 지금껏 기다렸지만 아무런 결과물이 없다. 깜깜한 터널 속에 갇혀 출구마저 보이지 않으니 앞으로도 크게 나아질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시제기는 군용기가 아니라는 황당한 이유로 보상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를 보완할 ‘군소음보상법 개정안’도 국회란 거대한 벽에 막혀 주저앉았다. 주민들과의 창구역할을 통해 문제 해결의 핵심이 돼야 할 소음대책협의체 구성 역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당초 시험비행을 앞둔 방위사업청과 공군, 제조사인 KAI 등은 피해보상을 위한 민·관 군 합동 협의체 구성을 약속했다. 소음피해 관련 대책이나 보상금 등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중대 기구로서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양새다. 사실상 협의체 불참을 선언한 것으로 약속파기나 다름이 없다.

더 이상 협의체 구성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사천시는 ‘소음대책협의체 설치·운영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참여에 난색을 표하는 핵심기관 대신, 공무원과 주민대표, 제작사 추천인,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협의체를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맹이는 빠진 채 급조된 협의체, 자치조례로 만들어진 껍데기뿐인 협의체일 뿐이다. 이런 협의체가 무슨 권한과 결정권이 있어 대책을 마련하고 주민들의 아픔 마음을 보듬을 수 있겠는가. 어불성설이고 형식적이며 유명무실한 협의체로 전락할 것이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협의체 구성원이길 포기한 기관에 면죄부를 주고, 갈등만 야기할 소음대책협의체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앙꼬 없는 찐빵’ 신세인 협의체가 아닌, 주민들이 주축이 된 ‘소음피해대책위’를 서둘러 구성해야 한다. 감 떨어지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대책을 마련하고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그것만이 무너진 자존심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감탄고토(甘呑苦吐)’. 지금 벌어지는 작금의 사태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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