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충과 효 사이에서
[경일춘추]충과 효 사이에서
  • 경남일보
  • 승인 2023.08.0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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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예리 경상국립대학교 지식재산융합학과 전담교수
류예리 경상국립대학교 지식재산융합학과 전담교수
휴가를 핑계로 안동에 계시는 어머니를 뵙고 왔다. 안동에 한우갈비골목이 생겨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안동식 한우갈비는 마늘과 참기름으로 양념을 해 맛과 빛깔이 가히 명품이었다. 안동은 간고등어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머지않아 안동식 마늘양념갈비도 그 못지않게 유명해지리라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회(河回)마을에 잠시 들렀다. 전통 민속마을인 이곳은 2010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강거의 제일은 평양이요, 계승의 제일은 하회’라고 극찬했다. 하회마을에는 2개의 보물이 있는데, 하나는 양진당이고 다른 하나는 충효당이다. 양진당(養眞堂)은 겸암 류운룡의 종가이고, 충효당(忠孝堂)은 서애 류성룡의 종가이다.

양진당과 충효당처럼 한 마을에 큰 종가와 작은 종가가 마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겪은 우리에게 이순신과 권율을 선조께 천거한 류성룡은 익숙하지만, 그의 형인 류운룡은 낯설다. 나는 정확히 말하면 류운룡의 후손이다.

나는 어릴 때 류운룡과 류성룡에 대해서 책에 나오지 않는 구전을 들은 적이 있다. 류운룡과 류성룡 두 분 모두 학식이 매우 높았지만, 류운룡은 효(孝)는 곧 충(忠)과 같으니 자신은 맏아들이라 부모를 모시기로 하고, 동생은 벼슬길에 나가도록 했다고 한다.

훗날 류운룡과 류성룡은 학문을 닦고 제자를 기르기 위해 각각 겸암정사와 옥연정사를 세운다. 겸암정사와 옥연정사는 부용대를 마주 보고 하나는 왼쪽에 다른 하나는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징비록(懲毖錄)은 바로 이 옥연정사에서 탄생한다. 겸암정사 앞에는 형제바위(立巖)가 있고, 큰 바위 옆에 작은 바위가 나란히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바위가 형제애를 상징한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형제바위에는 양쪽 정자 사이를 이어주는 토끼 길이 있어 형제가 숲속에서 서로 오고 가면서 많은 생각을 교감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아흔이 다 되신 어머니를 홀로 두고 일 때문에 서둘러 돌아와야 하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노모를 두고 떠날 수가 없어 동생에게 벼슬길을 양보했던 형의 넓은 마음이 새삼 이해가 된다. 그리고 형의 몫까지 더 열심히 나랏일에 매진했을 동생의 단단한 결심도 느껴진다. 사이드미러 속으로 어머니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눈시울은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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