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무더위와 강추위
[경일포럼]무더위와 강추위
  • 경남일보
  • 승인 2023.08.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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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8월 초순은 가장 더운 때다. 사람들은 이때의 더위를 두고 장마철이 끝난 본격적인 더위라고들 한다. 이때 날씨가 무덥다고 하고, 이때의 더위를 무더위라고들 한다. 잘못된 표현이며, 틀린 말이다. 장마철 7월 더위가 무더위다. 찜통더위다. 얼마 전 나는 대구로 갔다. 시인 이상화의 고택이 궁금해서였다. 그날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무더웠다. 장마철이라 습도가 높았다. 대구의 옛 지명은 달구벌. 농담 삼아 말하자면, 지열에 ‘달구’어진 ‘벌’판(분지)이라서 달구벌인가? 이처럼 습도와 온도가 동시에 높아야, 무덥다고 할 수 있다. 무더위는 물더위에서 온 말이다. 여기에서의 물은 습기다. 무좀을 두고 일본어로 ‘미즈무시(みずむし)’ 라고 한다. 무좀과 미즈무시는 모두 ‘물좀벌레’를 의미한다. 우리말 무좀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인 ‘벌레’를 생략한 형태요, 일본어 미즈무시는 ‘좀’을 생략한 형태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그러면 지금처럼의 더위, 습기가 없거나 습도가 낮은 더위를 뭐라고 하나? 무더위가 아니라, 강더위이다. 불볕더위다. 잘 쓰지 않는 말이니까, 사람들도 거의 쓰지 않는다. 강더위의 접두사 ‘강’은 토박이말이다. ‘~이 없는’의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러니까 강더위란, 습기가 없는 더위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예컨대 접두사 강을 조어(造語)한 말들을 살펴보자. 강(깡)술은 안주 없이 마시는 술. 강(깡)마르다는 살이 없이 몹시 수척한 경우. 강조밥은 다른 곡식을 섞지 않고 좁쌀만으로 지은 밥(순속반). 강참숯은 다른 나무로 구운 숯이 섞이지 않은 참숯. 강기침은 습기 없이 메마른 기침. 즉, 건기침. 강된장은 양념이 없거나 습기 없이 메마른 된장을 말한다. 요컨대 지금 같은 강더위는 무더운 날씨가 아니라, 후덥지근한 날씨다. 무더위와 강더위가 있다면, 무서리와 강서리도 있다. 습기 있는 묽은 서리와 습기 없는 된서리의 차이다. 비교컨대, 무더위와 강더위의 상대적 지표는 7월과 8월, 찜통과 가마솥, 습열과 건열이다. 지역적으로 볼 때, 습도가 높은 일본이 무더위가 많고, 상대적으로 건조한 우리나라는 강더위가 많다. 예로부터 습열(濕熱)은 전염병을 유발한다. 부조화한 음양의 기(氣) 때문이다.

그런데 강더위가 있으면, 강추위도 있다. 이것은 바람과 눈, 즉 풍설을 동반하지 아니한 추위다. 사람들이 또 잘못 알고 있다. 풍설을 동반한 엄혹한 추위를 강추위라고 한다. 그래서 ‘어거지(억지)’로 한자어로 된 접두사 강(强)을 붙여 혼선을 피하려고 한다. 야구에서의 강타자나 군대에서의 강행군처럼 강한(매서운) 추위를 두고 강(强)추위라고 하듯이. 그러니까 강추위와 강(强)추위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물과 열은 서로 잘 섞이지 않는다. 커피 물을 끓이듯이 잘 섞이는 건 아니다. 태양열은 바닷물 속으로 전도되지 않고 해수면에 보존된다. 세계적인 겨울철 휴양도시가 바닷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해안의 따뜻한 온기가 시베리아 발 차가운 북서풍을 만나면 눈이 된다. 풍설을 동반한 강(强)추위가 한반도를 강타한다. 동해안 역시 태백산맥과 기압 사이의 좁은 병목으로 풍설이 꽤 심하다. 옛 사람들이 그랬다. 통고지설은 일구지난설(一口之難說)이라. 통천과 고성의 눈은 한 입으로 설명하기 곤란하다고.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바람, 이른바 양간지풍은 또 어떤가? 해마다 봄에 산불을 유발한다.

그런데 부산과 경남은 지리산과 소백산맥이 겨울의 흔한 풍설과 중국 발 미세먼지를 막아준다. 강추위와 강(强)추위는 그리 많지 않다. 남해안 해수면의 온기도 다사로워, 3동(冬)과 3월의 이곳은 마치 낙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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