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기 논설위원
사기는 보편적으로 자신의 물질적, 심리적 만족을 위해 거짓, 위선으로 남을 속이는 행위이다. 그 기준과 영역은 광범위해 한마디로 설정하기가 어렵지만 ‘사기 공화국·거짓말 천국’이 되어 버렸다. 남을 속여 ‘먼저 보고 먹는 게 장땡’이란 말이 같이 압축적 경제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의식 수준이 따라가지 못해 사기꾼들이 판을 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사기죄는 흔한 범죄이나 우린 유독 다른 범죄에 비해 비중이 높다. 비교적 거짓말에 관대한 문화와 무고·위증·사기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은 솜방망이 처벌이 많다. 사기 범죄는 세계 1위고, 무고도 일본의 38배다.
사기죄는 인간의 신뢰를 배반, 재산을 빼앗는 최악의 범죄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먼저 범죄의 고의가 있어야 한다. 그 판단기준인 변제의사, 변제능력 등의 유무로 진짜 사기꾼과 단순한 채무 불이행자를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사기란 사실을 밝혀내도 잘 조직된 사기꾼과 그 집단은 사기 금액을 미리 빼돌리기 때문에 형사고소, 민사소송으로도 피해가 회복된 것은 거의 없다.
사기는 재산피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큰 고통을 겪는다. 대부분 자신을 자책, 때로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인간의 내면적 욕구를 교묘하게 다룰 줄 아는 사기꾼은 단순히 경계심으로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표적의 경계심을 역이용, 파 놓은 함정에 빠뜨리는 유인 방법을 쓴다. 사기꾼이 하는 짓은 숨소리 빼고 다 거짓말이라, 막상 그가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는 피해를 당하고 한참 지난 후다.
사기죄는 법정형이 너무 낮다. 가중처벌 규정도 한계가 뚜렷하다. 10년형에 5년형을 더해봤자 15년형이 최고다. 피해자가 7만여 명, 피해액이 5조원 가까웠던 조희팔 사건 공범들이 받은 형은 징역 1~10년에 그쳤고,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도 있었다. 자살한 피해자만 수 명인데도 처벌, 피해회복은 허무했다. 미국은 최고형 자체가 높고 개별 범죄 형량을 합산하기 때문에 수백 년의 형이 선고된다.
사기꾼일수록 말쑥, 예의가 바른척 은근한 미소가 매혹적이다. 기술이 교묘, 매력적이라 속수무책으로 누구나 당한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속담처럼 피해자가 많다. 피해가 개인의 책임이라 할 수도 있으나 팍팍한 일상에서 당하는 줄도 모르고 당한다. 오랜 시간 교류를 통해 인간관계를 쌓은 후 이를 악용, 배신하는 사기범은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악랄한 범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획파산’의 지능범죄인 신종 전세 사기와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공공기관 사칭이나 택배사, 보험사, 은행, 신용카드사, 수사기관, 소비자보호원 사칭 수법엔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고 입을 모은다.
시세보다 높은 임대차 계약으로 자기 돈 한 푼 안 들인 채 수백, 수천 채의 빌라 등을 매입, 전세보증금을 떼먹고 달아나는 무자본 갭투자 이른바 ‘빌라의 신의 깡통전세 사기’가 대표적이다. 메신저피싱, 보이스피싱, 주식, 동업, 채무 빙자, 부동산 투자, 높은 이자 미끼, 퇴직금 투자, 온라인 투자, 디지털 사기 등 사례도 많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고령 피해자들은 분노, 원망으로 시름시름 말라가는 고통은 대를 이어지기가 일쑤다. 정작 범죄자들은 교도소에서 몇 년 살다 나와 은닉해둔 자산으로 떵떵거리고 산다. 경제범죄인 사기가 다른 범죄에 비해 재범률이 유독 높은 이유다.
사기꾼은 활개 치는데 검찰·경찰·금감원의 법과 국가의 피해구제는 여전히 멀다. 보이스·메신저피싱은 거의 하부조직원만 검거되고 총책·관리책의 주범 검거율은 2%에 불과하다. 관속에 들어갈 때까지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다. 비단 경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와 연관된 사기도 많다.
이제 사기법은 패가망신한다는 무관용 원칙을 보여줘야 한다. 사기란 ‘썩은 살’을 과감히 도려내지 못하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사법당국 등 정부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감안, 법을 개정, 상습사기꾼은 극형을 선고, 감옥에서 생을 마감토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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