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박지웅)
입에서 나오는 가장 낮은 온도 잘 가
마트에서 구입한 제품처럼 건넨 잘 가
나는 잘 가를 받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앞뒤 잘린 토막의 말
잘 가는 피가 빠지는 데 몇 달이 걸렸다
몇 달째 꿈쩍하지 않는 잘 가
가끔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잘 가는 선뜻 나오지 않았다
고깃덩어리로 썩어가는 잘 가를
꺼내어 몇 번 삼키려 했으나
오래된 관처럼 입이 열리지 않았다
냉장고는 온통 사후의 세계
나는 냉장고에 심장을 넣고 기다린다
내 혀는 아직 핏물이 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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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참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오래 준비된 말이다.
짧은 음절의 그 차가운 통보는 잘 갈아든 칼날처럼 날카롭다.
마트에서 쉽게 구한 물건처럼 별다른 수식 없이 내팽개치진 낭패감에 그 말의 토막들이 오랫동안 가슴에 얼어있다.
냉장고는 버릴 것을 모아둔 것이 아니고 다음에 쓰일 것은 보관하는 곳이다.
잘 가라고 화답이 쉽게 나오질 않는 건, 아직도 그녀에게 대한 연분에 기대를 갖고 상하지 않게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 꺼내보고 내 감정을 삭이면서 아직도 그 이름을 기다리는 것이다.
내 혓바닥에 핏기로 도지고. 부패하지 않게 차갑게 보관 중이다.
잘 가라는 말씀은 아직 유효하지가 않다. 다만 실효 중이다.
미련, 실연, 이따위들. 참 이렇게 아프다.
경남시인협회장
여자의 혀는 정직하고 차가웠다
입에서 나오는 가장 낮은 온도 잘 가
마트에서 구입한 제품처럼 건넨 잘 가
나는 잘 가를 받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앞뒤 잘린 토막의 말
잘 가는 피가 빠지는 데 몇 달이 걸렸다
몇 달째 꿈쩍하지 않는 잘 가
가끔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잘 가는 선뜻 나오지 않았다
고깃덩어리로 썩어가는 잘 가를
꺼내어 몇 번 삼키려 했으나
오래된 관처럼 입이 열리지 않았다
냉장고는 온통 사후의 세계
나는 냉장고에 심장을 넣고 기다린다
내 혀는 아직 핏물이 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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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참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오래 준비된 말이다.
짧은 음절의 그 차가운 통보는 잘 갈아든 칼날처럼 날카롭다.
마트에서 쉽게 구한 물건처럼 별다른 수식 없이 내팽개치진 낭패감에 그 말의 토막들이 오랫동안 가슴에 얼어있다.
냉장고는 버릴 것을 모아둔 것이 아니고 다음에 쓰일 것은 보관하는 곳이다.
잘 가라고 화답이 쉽게 나오질 않는 건, 아직도 그녀에게 대한 연분에 기대를 갖고 상하지 않게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 꺼내보고 내 감정을 삭이면서 아직도 그 이름을 기다리는 것이다.
내 혓바닥에 핏기로 도지고. 부패하지 않게 차갑게 보관 중이다.
잘 가라는 말씀은 아직 유효하지가 않다. 다만 실효 중이다.
미련, 실연, 이따위들. 참 이렇게 아프다.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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