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키루스의 교육
[경일시론]키루스의 교육
  • 경남일보
  • 승인 2023.08.1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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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한중기 논설위원


엄마가 아이에게 물었다. “선생님에게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아이는 “수업 중 사례로 등장한 사건을 잘못 판결해 매를 맞았다”고 했다. 사건은 이랬다. 어떤 덩치 큰 소년이 작은 옷을 입고 있는데, 몸집이 작은 소년이 큰 옷을 입고 있는 걸 봤다. 그래서 큰 옷을 빼앗아 자기가 입고 자기 옷을 그에게 입혔다. 선생님이 이 사건을 어떻게 판결하겠느냐고 묻자 “두 사람 모두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게 됐으니 모두에게 좋다”고 했다가 혼쭐이 난 것이다.

요즘 대한민국이면 난리 칠 일이다. 엄마는 득달같이 선생님한테 전화를 걸어 노발대발했을 것이다. 세상이 들썩일 정도로 민원을 넣어 온·오프라인에 도배질하면서 야단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엄마는 선생님의 매질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판결에 앞서 법이 다른 사람 옷을 힘으로 빼앗는 게 옳은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점’과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언제나 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모든 정의는 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권리의 평등’을 참된 정의라고 가르친 그 엄마에 그 아들이었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키루스 대제가 12살 때 어머니와 나눈 이야기다. 이는 훗날 제왕의 국가경영 지침이 됐다. 법치와 정의, 절제와 관용의 통치철학으로 대제국을 세운 원동력이 됐다. 교육의 힘이다. 왕의 DNA는 타고난 것이 아니다. 지혜로운 어머니의 교육이 있었기에 키루스라는 위대한 인물이 탄생한 것이다.

소크라테스 수제자 중 한 명인 크세노폰은 왜 조국 그리스에 엄청난 피바람과 공포를 몰고 온 적대국 페르시아 왕가의 교육을 소재로 역작 ‘키루스의 교육’을 남겼을까. 키루스의 어머니를 통해 ‘권리의 평등’이야 말로 참된 정의를 실현하는 길임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주장한 정의와는 완전히 배치되는 개념으로 완성한 ‘키루스의 교육’은 서양에서 군주의 거울로 오래도록 전승되어 오고 있다.

연일 속보처럼 이어지는 교육현장의 안타까운 뉴스를 접할 때마다 키루스의 교육이 새삼 되새겨진다. 키루스의 어머니처럼 지혜로운 교육관을 가진 부모 찾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금쪽 같이 귀하게 키운 자식이다 보니 생긴 일이거니 하면서 치부할 일이 아니다. 플라톤의 말처럼 ‘정의는 신분이나 계급별로 정해져 있는 덕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통치자와 수호자에게만 종속되고, 일반 시민은 절제해야만 정의가 구현되는 것도 아니다. 권리가 모두에게 평등할 때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내 자식만 금쪽이 아니다. 내 아이가 금쪽이면 세상의 모든 사람도 금쪽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성의 기본이다. 내 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도 하기 싫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걸 잊고 사는 모양이다.

자식이 잘 되기 바란다면 성적 보다 중요한 것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탁월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지혜와 용기, 정의의 덕목을 차근차근 쌓아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인성의 덕목을 구현하는 것이 궁극적인 교육의 완성이랄 수 있다. 자신이 누군지 살펴보면, 상대방이 보이고, 모두가 보이는 법이다. 인성교육은 자신을 먼저 살펴보는 일이다. 교육현장의 파열음은 암울한 미래의 전조 현상이기도하다.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릴 적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키루스는 ‘다른 사람과 행복을 나누면서,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도록 도우면서, 어떤 누구에게도 슬픔을 주지 않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지혜로운 어머니의 교육 덕분이다. 우리 아이들도 키루스처럼 키울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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