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45]옥천 부소담악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45]옥천 부소담악길
  • 경남일보
  • 승인 2023.08.1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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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이 만든 아름다운 풍경, 부소담악
◇‘향수’의 고향, 옥천을 가다

20여 년 전, 충북 옥천군에 있는 정지용 생가에 다녀온 적이 있다. 향수의 시인이라 불리는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를 성악가 박인수 교수와 가수 이동원 씨가 듀엣으로 부른 뒤 ‘향수’가 전 국민의 애창곡으로 사랑받았다. 1989년 5월 음반 발매 후 7개월 만에 70만 장이나 팔렸고 10여 년 동안 130만 장이 팔렸다고 한다. ‘향수’가 옥천의 들녘에만 울려 퍼진 것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질 정도로 그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적이 있다.

향수를 부른 박인수 교수는 그 당시 국립오페라단 차기 단장으로 물망에 오를 정도로 오페라계 유명 인사였는데 대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오페라단에서 제명당했다고 한다. 요즘에야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트로트를 비롯한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1980년대에는 클래식 성악가가 공식적인 무대에서 대중가요를 부르면 성악가로서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로 여겨 드센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인생살이가 새옹지마와 같다더니 오페라단에서 제명당한 박인수 교수는 전국 공연 횟수가 많아졌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가 한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했던 걸 생각하면 시 한 편, 노래 한 곡이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문학과 예술이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수몰이 만든 절경, 부소담악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고향인 옥천에 대청댐을 만든 뒤, 대청호 주변에 ‘대청호 오백리 둘레길’ 27구간을 조성했는데 둘레길 7구간의 일부인 ‘부소담악길’을 명품 걷기 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트레킹(걷기 여행)을 떠났다.

진주에서 2시간 30분 정도 걸려 부소담악길 들머리가 있는 황룡사 입구에 도착했다. 부소무늬마을 앞 호수에 솟은 바위산이란 의미를 가진 ‘부소담악(芙沼潭岳)’은 추소정에서 바위 능선이 700m 정도 대청호 속으로 용 꼬리처럼 길게 뻗어있다. 부소담악길 초입 데크 길과 야자 매트를 깔아놓은 길을 지나자 장승공원이 맨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너에게 행복을’이란 글귀를 새긴 목장승 셋이 장승공원을 지키고 있었다. 수많은 장승이 떼로 맞이할 줄 알았는데 다소 실망감을 안고 부소담악을 조망할 수 있는 추소정으로 향했다.

추소정에 오르자 용꼬리처럼 길게 뻗은 부소담악의 능선과 대청호 호수, 그리고 미르정원이 어우러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부소담악길을 트레킹하기 위해 능선길을 따라 130m 정도 걸어가자 ‘출입금지’ 표지판이 필자 일행을 막아섰다. 사고 위험 때문에 탐방객들의 출입을 차단해 놓았다고 하는데 지자체가 탐방객을 맞이하기 전에 안전시설 등을 세심하게 준비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안고 미르정원으로 가기 위해 추소마을 선착장으로 갔다. 모터보트를 타고 호수 건너편 미르정원으로 가는데, 가는 도중에 부소담악의 길게 뻗은 몸통인 바위 능선을 유람시켜줬다. 호수에 잠기고 바위 능선의 일부만 남은 모습이 아름다운 풍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부소담악길을 다 걸어보지 못한 아쉬움을 보트를 타고 부소담악 능선의 옆구리를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미르정원엔 수국을 비롯한 각종 화초와 나무들이 필자 일행을 반겨줬다. 야트막한 산 능선을 따라 조성해 놓은 미르정원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멍때리는 언덕’이었다. 나무 벤치에 앉아 가까운 풀숲을 보며 ‘숲멍’을 하고, 고개를 들어 먼 호수를 바라보며 ‘물멍’을 하며 명상에 잠기면 뻐꾸기를 비롯한 각종 새소리와 매미소리를 들으며 ‘소리멍’에 잠길 수 있었다. 미르정원 탐방을 마치고 보트를 타고 다시 추소마을 쪽으로 되돌아왔다.

◇새옹지마 같았던 옥천 여행길

추소마을 선착장에서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황룡사 입구 쪽으로 오자, 주차장이 없어 도로에 세워둔 차들로 ‘차산차해’를 이뤄 우리가 탄 버스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거북이걸음으로 부소담악에서 빠져나온 필자 일행은 걷기힐링의 마지막 코스인 ‘화인산림욕장’으로 향했다.

무더위 속에서 짜증 섞인 얼굴로 도착한 ‘화인산림욕장’은 찌푸린 하루를 일순간 활짝 펴게 해 주었다. 산림욕장에 들어서자 메타세쿼이아, 은행나무, 편백, 니끼다솔, 소나무, 참나무, 삼나무 등 각각의 나무들끼리 숲길을 이뤄 필자 일행을 맞이했다. 손현주의 ‘간이역’과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의 촬영지 탐방을 비롯해 ‘숲속의 종’을 울리며 1시간 정도의 힐링 숲길을 걷고 나오니 일행들의 얼굴에는 피톤치드 가득 머금은 미소가 활짝 펴있었다.

처음 가보는 부소담악에 대한 기대감, 출입 금지로 인한 실망감, 보트 타고 유람한 부소담악 옆구리의 절경, 차산차해로 막힌 도로, 마지막으로 본 화인산림욕장에서의 피톤치드 같은 힐링 등을 떠올리면 옥천 여행은 새옹지마와 같은 하루였다.

버스 차창 너머로 펼쳐진 옥천 들녘을 보면서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를 읊조려 보았다. 아늑한 고향의 품속으로 안기는 기분이 들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박종현 시인·멀구슬문학회 대표

 
화인산림욕장의 메타세쿼이아 길.
화인산림욕장에서 산책을 하는 회원들.
추소정.
멍때리는 억덕에서 물멍을 하는 모습.
미르공원에서 바라본 추소정.
미르정원 휴게소에서 환담을 나누는 탐방객들.
보트를 타고 유람하는 모습.
장승공원에 선 장승 부부.
수몰지역의 옛 우물터.
추소정에서 바라본 부소담악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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