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
[경일춘추]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
  • 경남일보
  • 승인 2023.08.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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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참진주요양원 부원장
김상진 참진주요양원 부원장
요양원 어르신들의 손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거칠고 힘줄 불거진 손이 많습니다. 손 마디마디 옹이가 있고 굳은살이 박혀 있습니다. 매니큐어는커녕 핸드크림 한번 제대로 바르지 못한 손입니다. 자기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성실함이 배어있는 손입니다.

그 손으로 자녀를 키웠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가 됐습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손 한번 다정하게 잡아보지 못한 후회로 요양원 어르신의 손을 자주 잡습니다.

최 할머니는 두 손 모으고 늘 기도합니다.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요양원 구석구석을 다니며 기도합니다. 특정 종교에 속하지 않는 할머니의 순박한 기도라 더 절절합니다.

“한 치 앞을 모르고 사는 인생 최○○입니다. 이쁘게 봐 주이소. 안 아프고 살다가 자는 잠에 데려가 주이소.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천지신명님 도와주옵소서. 명천하늘님 도와주옵소서 조상님네 도와주옵소서. 관세음보살…”(“도와주옵소서”라고 말할 때는 하늘을 우러러보신다)

요양원 오시기 전 최 할머니는 매일 아침 장독대에 냉수 한 사발 떠 놓고 자식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기도 덕분에 자녀들은 성실한 시민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기도가 이제는 자식들한테 걱정 끼치지 않고 떠나게 해달라는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영원합니다.

오 할아버지의 한 손은 손가락이 4개뿐입니다. 목수였던 할아버지는 일하다가 손가락을 잃었습니다. 없는 손가락 주변은 혈액순환이 잘 안돼 늘 시퍼렇습니다. 그는 평생 수십 채의 집을 지었습니다. 자신이 지은 집에 살면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고 뿌듯했다고 합니다.

늘 휴지를 쥐고 다니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한번 쓴 휴지를 다시 사용하십니다. 말려도 듣지 않습니다. 근검절약이 밴 손으로 살림을 일구고 자녀를 길렀습니다. 치매는 휴지 한 장도 아꼈던 기억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류 할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분필 잡았던 손가락에 굳은살이 잡힙니다. 사랑과 정성으로 길러낸 수천 명의 제자는 사회의 일꾼이 됐습니다. 자녀들도 모두 훌륭한 교육자로 키웠습니다.

농사를 짓느라 굳을 살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고사목 같은 정 할머니의 손도 있습니다. 흙의 경건함을 알고 자연에 감사하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습니다. 요양원 어르신들의 손에는 이 땅의 역사와 가족의 애환이 묻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밥도 떠 먹지 못할 만큼 힘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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