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학생 인권과 교권, 어느 쪽도 가볍지 않다
[경일시론]학생 인권과 교권, 어느 쪽도 가볍지 않다
  • 경남일보
  • 승인 2023.08.2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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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정재모 논설위원


교육부는 지난 17일 ‘교권 보호를 위한 학생생활 지도 고시안’을 발표했다. 국가차원의 지침이며 조례보다 상위 개념이다. 근거는 지난해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의 교원 생활지도 권한 조항. 최근 한 초등 교사의 극단 선택으로 교권 침해 논란이 일자 윤석열 대통령이 “학교 현장에 적용할 고시를 제정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조치다. 학생인권조례를 비판해온 사람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대로 그 조례 시행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흔쾌히 받아들이는 표정이 아니다.

고시안 내용 중엔 교실 현실에 크게 관심 갖지 않았던 사람들로서는 놀라운 게 많다. △교사는 학생이 폭력으로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경우 물리적으로 제지할 수 았다. △수업 중 학생의 휴대전화 사용을 제지할 수 있다. 아침에 일괄 수거해서 하교 때 돌려줘도 된다. △잘못한 것에 대해 주의를 줘도 안 들으면 반성문을 쓰게 할 수 있다…. 그동안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해도 그냥 맞는 경우가 많았단다. 학생 몸에 손을 대면 자칫 아동 학대죄가 될 수 있기 때문. 교사의 주의를 무시하고 전화기를 계속 사용해도 어쩌지 못했다. 지금까지 학교와 선생님은 이 어이없는 현실에 시달렸다는 얘기다.

수업 중 엎드려 자는 학생에게 ‘똑바로 앉으라’고 시키는 것도 가능해진다. 수업 중에 자는 학생을 깨우는 것도 안 되었던 모양이다. 현재는 ‘손 들고 있기’를 시킬 수 없다. 두발 검사도 하면 안 된다. 이런 것은 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금지한 체벌에 해당하고, 학생인권조례에 저촉된다. 구체적 내용을 처음 듣는 이들에겐 헛웃음이 나온다. 이 기막힌 현실 때문에 교육 현장의 선생님들이 그토록 교권을 외쳐왔을 거라 싶다. 이처럼 고시안에 담긴 너무나 비상식적인 내용들을 보면 그동안 막연히 들어오던 교권(敎權) 추락의 실정을 짐작할 만하다.

그렇다면 교권 추락은 전적으로 학생인권조례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조항 때문인가. 달리 말해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면 교권은 추락하게 돼 있는가? 이런 의문에 사람들은 으레 예나 아니오란 명쾌한 대답을 피한다. 그저 ‘양자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합리적 해결책’이란 미지근한 응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런 의문 설정과 해결책은 온당치 않다. 양자를 대립 관계로 보는 인식이 깔린 물음이고 대답이기 때문이다. 둘은 대립 관계일 수 없다.

교권은 학생을 잘 교육하기 위해 사회나 국가가 교원에게 위임한 권한이다. 따라서 교권은 학생의 인권 존중이 대 전제일 것이다. 교권에 학생 체벌권이나 유무형의 차별권이 포함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학생 인권을 이유로 선생님에 대한 학생의 폭력이 허용될 리도 없다. 남의 인권이 존중돼야 나의 그것도 존중된다. 교사와 학생은 상호 존중의 관계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작금 우리 사회의 커다란 화두, 교권과 학생 인권의 충돌로 비쳐지는 일들은 매우 우려스럽다. 어느 한쪽 또는 양자 모두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외한으로 조심스럽지만, 이번 고시안 조치들은 ‘상식적 교실’ 회복을 바라는 입장에서 수긍할 만하다. 다만 ‘~할 경우에는 교사가 학생의 행위를 물리적으로 제지할 수 있다’든지, 퇴실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조항들은 우려되는 바 없지 않기도 하다. 물리적 제지란 어떻게 설명을 하든 결국은 체벌이며 곧 손발이나 매로 때리는 것을 포함할 테다. 그러나 학생이 교사에게 폭력을 쓰는 일이 천만부당하듯이 학생에 대한 교사의 폭력 또한 허락될 수 없다. 고시안 속 ‘물리적 제지’의 정의를 매우 구체적으로 밝혀둘 필요가 있다.

고시는 내주 새학기부터 시행된다. 되더라도 학생 인권은 엄격히 존중돼야 한다. 학교와 선생님들이 깊이 다짐해야 할 일이다. 교권과 학생 인권, 어느 하나가 더 무겁거나 가벼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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