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제비야, 강남 갔다가 오너라
[경일포럼]제비야, 강남 갔다가 오너라
  • 경남일보
  • 승인 2023.08.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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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창녕군 이방면의 이방시장 주변에는 70여 마리의 제비가 매년 찾아와서 이곳을 자기 고향으로 생각하며 정붙이고 살고 있다. 9년 전, 창원에서 살 때 만났던 제비가 생각났다. 창원지방법원 건너편에 있는 사파동 단독주택단지이다. 이 동네는 토박이가 많다. 지난 주에 그 동네에 가서 이 골목, 저 골목을 둘러 보았다. 당시에 매일 눈을 마주쳤던 제비를 찾기 위해서였다. 동네는 거의 달라진 게 없다. 강아지 데리고 자주 들렀던 작은 공원도 그대로고, 수시로 군것질하러 들렀던 구멍가게도 여전히 있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유휴지에는 풀이 우거져서 제비 먹이인 날벌레들이 많았다. 그러나 제비는 불과 네 마리뿐이었다. 전깃줄에 앉아서 두 마리는 장난을 치고 있고, 두 마리는 지지배배 떠들고 있었다. 동네를 한바퀴 둘러보니 생생한 둥지는 세 개뿐이었다. 마침 내가 살았던 집의 1층 현관 전등에 앉아있는 제비를 보았다. 집마당에 있는 청년에게 물었더니 매년 제비가 온다면서 이번 봄에도 둥지에서 새끼 세 마리를 키웠다고 했다. 반가웠다.

2014년 5월, 제비 두 마리가 내가 사는 집의 현관문 앞에서 둥지를 짓고 있었다. 꼬박 1주일이 걸려 정성스럽게 짓는 모습을 눈여겨 보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았더니 둥지는 10여 개이고, 어미 제비가 20여 마리였다. 날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골목마다 저공비행을 하는 제비들이 분주했다. 이 동네 토박이인 도의원, 시의원을 만나서 유독 이 동네에 제비가 사는 이유를 물었더니 경남FC 유소년축구장 옆에 있는 논과 연못이 있어서 둥지를 짓는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주거지 조성을 위한 도시개발이 조만간 진행될 거니까 앞으로는 제비 보기가 힘들 거라 했다. 나는 사파지구 도시개발사업을 담당하는 시청 도시개발사업소 현안사업과를 찾아갔다.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논의 일부와 연못을 개발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건의하니 다행히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중이니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했다. 고마웠다. 몇 달 후에 담당과장이 퇴임한다고 하여 다시 확인했더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후 사유지 보상절차가 진행되는 시점인 2016년이 되었다. 나는 제비 서식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4월 14일자 경남포럼에 제비가 동네에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내용을 자세히 적었다.

7년이 지나는 동안에 아파트 건설공사는 벌써 끝나고 주민들이 입주해서 살고 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논과 연못을 찾으러 나섰다. 경남FC 유소년축구장과 주차장 사이에 있는 길로 들어서서 정병산 쪽으로 올라갔다. 이 길은 지금도 여전히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다. 예전에 논과 연못이 있던 자리로 갔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아래로 대규모 아파트단지인 U-보라IVY파크가 보였다. 시공업체는 택지개발을 위한 토목공사를 하면서 기존에 있던 모든 것들은 완전히 무시했다. 둥지를 지을 재료도 없어졌고, 먹이도 부족해졌다. 지금은 이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제비가 예전의 반의 반도 안된다. 안타깝다. 도심지에서 제비를 볼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다. 내가 살던 집 2층에는 두 가구가 나란히 있었다. 옆집에는 젊은 부부가 초등학교 1학년 아이와 함께 살았다. 제비가 현관문 앞에서 한창 집을 짓고 있을 때 나는 그 어린이를 조용히 불렀다. 어린이는 생전 처음 보는 제비가 신기해서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갑자기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조금 후에 동화책 ‘흥부와 놀부’를 들고 나왔다. 책에 그려져 있는 제비 그림과 눈앞에서 둥지를 짓고 있는 제비를 번갈아 보느라고 바빴다.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한 아이가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이 동네 어린이들은 조만간 제비를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제비를 이 동네에서 쫓아낸 공무원과 개발업자를 고발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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