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아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수는 단순히 계산을 넘어 우리 삶의 다양한 면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특히 일상에서 많고 적음, 길고 짧음 등의 양을 나타낼 때 상징적인 의미로 적절히 활용된다. 예를 들어 ‘9’는 한 자리 자연수 중에 가장 크기 때문에 ‘많음’을 나타내는 다양한 문화적 표현에 사용된다. ‘구천(九天)’은 가장 높은 하늘, ‘구중(九重)’은 여러 겹이나 층을 이르는 말이고, ‘구우일모(九牛一毛)’는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 박힌 하나의 털이란 뜻으로 매우 많은 것 가운데 극히 적은 수를 이르는 말이다. 또 먼 나라를 ‘구역(九譯)’이라 하여 아홉 번이나 통역을 거쳐야 하는 곳으로 과장해 표현한다.
또한, 백·천·만·억·조와 같은 단위를 사용해 실제로 큰 수를 나타내는데, 많은 학자들을 백가(百家)라 하며, 아주 먼 옛적을 천고(千古), 오래고 긴 세월을 천추(千秋)라 한다. 천리마(千里馬), 천리안(千里眼)처럼 먼 거리를 나타낼 때 ‘천리’를 사용하고, 자손만대(子孫萬代), 만고불변(萬古不變) 등으로 영원함을 나타낸다. 또한 천군만마(千軍輓馬), 억조창생(億兆蒼生)처럼 두 개의 수 단위를 함께 사용해 ‘몹시’ 많음을 나타낸다.
일상에서 억이나 조 단위를 넘어서는 수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불교경전에는 더 큰 수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항하사(恒何沙)’는 갠지스 강변(항하)의 모래알만큼의 수를 뜻하며, 수리적으로는 10의 52승이다.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의 ‘무량대수(無量大數)’는 10의 68승을 가리킨다. 이 얼마나 큰 수인지 어림하기도 어렵다. 더욱 광대한 시간 척도를 나타낼 때 ‘겁(劫)’을 사용하는데, 1겁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유순(약 8㎞)인 성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백년마다 겨자씨를 하나씩 꺼내어 그것이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1보다 작은 수 단위도 있다. 실제로 빅뱅 이론에서는 약 5.39×10의 -44승초 라는 극단적으로 짧은 시간 단위로 ‘플랑크 시간’이 등장한다. 이는 물리적으로 측정가능하고 유의미한 최소 시간으로 해석된다. ‘탄지’는 10의 -17승을 가리키는데, 세월의 아주 빠름을 얘기할 때 ‘탄지지간(彈指之間)’이라 하고, 탄지의 10분의 1이 되는 수, 즉 10의 -18승은 ‘찰나’라 한다.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사이에 65찰나가 지나간다고 하니 찰나가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작은 단위부터 광대한 척도까지, 수는 실제 응용과 상징적인 의미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유용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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