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46)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46)
  • 경남일보
  • 승인 2023.08.3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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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후문학파와 노령시학(1)
필자는 교수 현역을 은퇴한 이후 기회가 닿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직을 맡게 되면서 ‘편집인’으로 《월간문학》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과거에 없던 〈문학표절문제연구소장〉의 주요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주변에선 교수면 되었지 문인협회 간부로 간다는 것이 좀, 그런 것 아니냐고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나름 소임의 중요성을 간파했고, 필자로서는 한국문학판의 해묵은 진영논리를 일부 개선하는 일에 초점을 잡아 보기로 했다. 거기다 한국문단에 표절문제가 터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갔다. 이때 한국문협에서는 필자를 지체하지 않고 〈문학표절문제연구소장〉으로 임명했다.

오늘은 그 모든 문제 속에서 뜻하지 않게 문인협회내의 계층간 갈등이 연령대에서 엄존하고 있음을 보고 필자는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후문학파〉를 제창하여 그 간극을 좁히고자 했다. 어느날 한국문인협회 회원들의 연령대 조사를 해보니 고령층 65세 이상이 거의 65%를 넘고 있어서 그들과 신진 내지 소장층과는 심리적으로 문우로서의 공감대가 미약한 것이 현실이었다. 좀 구체적으로 말하면 문인 인구의 고령화는 퇴직후에 등단하는 추세가 있고 그들과 문단의 전통 등단 시기인 20대 30대에 나온 소장층과는 거리감이 있고 심지어는 외면하는 경우도 있음을 보고 아, 이 문제 갈등을 푸는 장치가 필요함을 실감했다.

필자는 문인들 중에서 ‘선문학파’(인생을 문학과 함께 해온 문인들, 주로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에 등단한 사람)와 ‘후문학파’(인생 경험을 먼저 하고 뒤에 문학을 시작한, 곧 정연퇴임이후 등단)가 있음을 구별해 볼 수 있었다. 이른바 후문학파는 늦깎이 문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문인협회는 구조상 늦깎이 문인들이 더 많은 것으로 집계가 되었다.

사실 진주 출신 문인들중 유명한 두 분이 이 기준으로 하면 ‘후문학파’이다. 시인 이경순(1905년생, 1948년 등단)과 소설가 이병주(1921년생, 1965년 등단)가 그러하다. 이경순은 일제하 20년간을 일본에서 아나키즘 운동을 하다가 귀국하여 43세에 등단하고 이병주는 학병, 교수, 언론인 등을 거쳐 44세에 등단했으니 ‘선인생’의 체험이 참으로 단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불어난 문협 늦깎이 문인들의 경우 ‘선인생’이 단순 정연퇴임 이후라는 인상을 주면서 ‘선인생’이 문인으로서의 갖추어진 경력인가 아닌가에 따라 인상이 달라질 수 있었다.

어쨌거나 필자는 문협의 계층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늦은 등단의 경우를 ‘후문학파’로 통칭해 부르자는 주장을 했다. 전한국문인협회 문효치 이사장은 회원초대 행사에 가서 “예, 강희근 시인에 의하면 선생께서는 후문학파로 선인생의 쌓여진 경력이 문학이 된 분이십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저서는 인생론적인 세계를 보이는 것으로 경륜이 우선하는 저슬인 것입니다”하고 축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 ‘후문학파’ 지칭에 각별히 선호하는 시인은 유안진 시인이었다. “교수님! 후문학파 용어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내게도 그럴 만한 후문학파 제자가 있습니다.”

몇 년 전이지 싶다. 서울의 H신문에 뜻하지 않게 ‘강희근’이름이 뜬다고 일러주는 제자가 있었다. 그 기사는 평론가 정호웅이 쓴 글로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준성의 10주기 기념 소설집에 붙인 해설비평이었다. “강희근 시인에 의하면 소설가 김준성은 후문학파에 속한다…”라 나와 있었다. 김준성은 부총리를 지낸 사람이지만 후에 소설에 집중하여 〈이수문학상〉까지 제정되어 신진 소설가들이 다투어 받기를 원하는 상이 되어 있다.

진주에는 세 분의 후문학파가 있다. 정재필(시인), 성종화(시인), 정봉화(수필가) 가 그들인데 동인지 《남강은 흐른다》에 해설을 필자가 붙이고 ‘후문학파’라 불렀다. 세분은 진주중학교 다닐 때 한 반 친구로 세상에 나와 글동무로 다시 만난 것이었다. 성종화는 제5회 개천예술제 고등부 장원으로 문명을 떨쳤고 학원 등 소년문사로도 기억될 만한 인물이었다. 정재필 또한 학생문단 출신으로 부산대학 다니면서 걸출한 시인으로 죽순처럼 성장했던 시인이고 정봉화는 그 무렵에는 문학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나 50여년 후 해학과 기지로 인생 파노라마를 수놓아가는 탁월한 수필 인생을 만들었다. 정봉화 수필가는 육사 출신으로 시대의 인물 윤필용 장군의 비서실장이었다. 이 세 사람 동인은 필자가 다닌 중학교의 네 해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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