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서부취재본부장
우주항공청 특별법이 최악의 국회로 인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공약이자, 국가의 미래인 우주산업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법안이지만, ‘염불보단 잿밥’이 우선인 그들에겐 정쟁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이 법안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된 것은 지난 4월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 상정됐지만,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반발과 발목잡기가 우주항공청 연내 사천 설립의 꿈을 사실상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연내 개청이 아니란 우려가 나온다. 과연 설립은 되는 건지, 설립된다면 계획대로 사천이 될지 등등 모든 게 불투명해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금의 국회는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싸우는 난장판이다. 서로를 죽여야 살아남는 야생 같은 정치판에서, 화합하고 양보하며 협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여기에 몇 달 뒤면 총선이란 큰 변수도 도사리고 있다. 이래저래 우주항공청 사천 설립이 정부의 계획대로 차질 없이 추진될 지에 강한 의문이 드는 이유이다.
우주항공청이 설립되려면 우선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소관 상임위인 과방위 내 소위원회에서 이를 다루고, 이후 과방위 전체 심의와 법사위, 국회 본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하지만 이 법안은 현재 1차 관문도 통과하지 못한 채 5개월 째 표류 중이다. 이런 국회를 바라보는 경남도민은 울화통이 터진다.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 틈날 때마다 국회를 찾아 읍소하고, 성난 민심을 모아 건의도, 집회도 해 보았지만 ‘소귀에 경읽기’나 다름없다.
그러다 최근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일’이 과방위에서 일어났다. 그간 여야는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심의할 안건조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두고 극한 대립을 보이며 파행을 거듭해 왔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이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기에 사활을 걸었다. 그런데 최근 여당이 그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에 양보했다. 지지부진한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추석 전 매듭짓겠다는 약속을 받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약속이 지켜진다면 이 법안은 안건조정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확정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해결을 위한 단초를 끼웠다는 데서 크게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오히려 불안감은 더 높아지는 분위기이다. 위원장인 조승래 의원이 누구인가.
그는 대전 유성갑이 지역구이다. 우주항공청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될 때부터 대전 적지론을 폈다. 당시 여당의 막강한 힘을 등에 업고 사천 설립에 딴죽을 걸었다. 이후 우주항공청이 12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자 대전과 충청권 민주당 의원들을 규합해 가장 강하게 반대해 온 인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정부가 우주항공청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 두려하자, 대통령 직속 우주전략본부(가칭)를 둬야 한다며 대안 입법을 내는 등 끝까지 발목을 잡고 몽니를 부리는 데 앞장섰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그런 그가 우주항공청 특별법의 운명을 쥔 안건조정위원장이란 칼자루를 쥐었다. 경남으로서는 손바닥 뒤집듯 하는 정치판과 그의 전력을 감안하면 ‘왜 하필 조승래 인가’라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조 의원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국익과 대의를 위해 칼을 휘둔다면 존경받는 정치인의 반열에 오를 것이고, 당리당략을 위해 칼을 휘둔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조 의원이 가슴깊이 새기고 행동해야 할 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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