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주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임란 보드게임 뿌듯"
손은주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임란 보드게임 뿌듯"
  • 백지영
  • 승인 2023.09.0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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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진주박물관 3년 들여 임진왜란 3대첩 보드게임 시리즈 제작
“제가 아이디어를 내기는 했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어요. 초등생 자녀를 따라 보드게임 카페도 가보고, 대학생 조카와 함께 중국어판 전쟁 관련 보드게임을 구해 연구해 보기도 했지요.”

지난 7월 말, 국립진주박물관(이하 박물관)은 3년에 걸친 짧지 않은 여정을 마무리했다. 임진왜란 3대첩을 소재로 한 역사 보드게임 3종을 완성한 것.

보드게임은 종이나 나무판 같은 놀이도구 주변에 여럿이 둘러앉아 즐기는 놀이 등을 일컫는 용어다. 부루마블이나 젠가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게임이나 윷놀이 같은 한국 전통놀이는 물론, 다양한 난이도와 유형의 게임이 제작돼 애호가를 중심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박물관이 내놓은 보드게임 3종은 지난 2021년 첫선을 보인 1탄 ‘진주대첩’과 지난해 출시한 2탄 ‘한산대첩’, 최근 공개한 3탄 ‘행주대첩’까지 모두 3종. 임진왜란 특화 박물관이라는 정체성을 한껏 살린 행보다.

처음 출시할 당시만 해도 국립박물관에서 박물관 전시 주제나 역사적 내용을 주제로 보드게임을 개발하는 국내 첫 도전이었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박물관에서 학생들이나 젊은 층 등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보드게임을 직접 제작하고 나선 점이 반가우면서도 신기했다.

최근 박물관을 찾아 보드게임 제작을 이끈 손은주(48) 학예연구사에게 그 배경을 물었다.

손 학예연구사는 지난 2007년부터 16년째 이곳에서 박물관 교육 업무를 맡아온 학예 연구사다. 박물관에 전시된 문화재·소장품을 관람객이 보다 쉽게 이해하고, 흥미·관심을 가질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해왔다. 시작은 더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2012년 교육팀에서 ‘진주성 레이스’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했습니다. 게임을 통해 박물관 문화재와 진주성 유적을 익히는 활동이었죠. 날씨 제약으로 실내용도 제작하게 됐는데, 이건 또 준비물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때부터 휴대가 가능한 보드게임을 만들어봐야겠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몇 년간 생각만 했던 일이 본궤도에 오른 것은 3년 전. 당시 새로 발령받은 학예연구실장에게 다소 독특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기획을 전하자 흔쾌히 해보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침 박물관 브랜드 활성화를 위한 예산도 별도로 내려왔던 시점인 만큼 3박자가 딱 맞아떨어졌다.

호기롭게 보드게임 제작 승인을 얻어냈지만,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우선 손 학예연구사 본인부터 보드게임에 그리 밝지 않았다.

앞서 보드게임을 만들어 본 공공기관에 문의하기도 하고, 초등생 자녀가 보드게임 카페로 놀러갈 때 따라나서기도 했다. 마침 아이와 함께 방문한 곳을 보드게임산업협회 진주센터장이 운영하는 인연으로 다양한 조언을 구했다.

보드게임을 즐겨하는 대학생 조카의 도움도 컸다. 국내외 전쟁 관련 보드게임은 물론 한국에도 없는 ‘중국 출시’ 임진왜란 보드게임을 구해 함께 섭렵하고 고민했다.

손 학예연구사는 “임진왜란 3대첩 시리즈를 개발하다 보니 각 게임의 방법상 차별성을 어떻게 줘야 할지 고심했다”면서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이라 폭력성은 없애되 학습 효과는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박물관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게임인 만큼, 시중 게임과 달리 고증에도 상당한 신경을 썼다. 역사적 내용뿐만 아니라 조선 장군과 군사의 복장, 일본 장수의 복장과 가문별 문양 등 살펴볼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던 만큼 전공자에게 일일이 조언을 구했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학습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고민 끝에 탄생한 게임들은 박물관 교육에 나선 학생들에게 톡톡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게임 속 카드에서 마주한 승자총통·조총 등을 몇 발짝만 옮기면 실물로 마주할 수 있는 만큼, 교과서 속 한 단어로 접했던 때와 비교하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물관은 임진왜란 3대첩 보드게임을 각 1000개씩 비매품으로 제작해 대첩이 펼쳐진 역사의 장소 인근 초등학교와 교육기관과 공립·사립·대학 박물관 등에 배포했다. 게임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 공개에도 나섰다. 박물관 유튜브 채널에 ‘진주대첩’ 편은 이미 올라가 있고 ‘한산대첩’과 ‘행주대첩’ 편은 가을 중 게시할 예정이다.

뿌듯하면서도 난감한 순간은 전국에서 보드게임 출시 소식을 접한 이들이 자신도 해보고 싶다며 연락해 올 때다.

당초 협업에 나선 개발업체나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등과 함께 박물관 기념품의 한 유형으로 판매하는 방안도 검토해 봤으나,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실현에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박물관 유튜브 채널 보드게임 ‘진주대첩’ 영상에는 ‘먼 지역에서 근무하는 초등교사다. 정식 발매 부탁드린다. 학급에서 아이들과 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좋을 것 같다. 주문 생산해서 일반 판매도 했으면 좋겠다’ 등 댓글이 달렸다.

손 학예연구사는 “전화로 보드게임을 구하고 싶다는 문의가 종종 들어온다”며 “거주지를 물은 뒤 인근에 배포한 박물관 등이 있으면 그곳에서 빌려서 해보는 방법을 추천한다”고 설명했다.

한때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박물관 휴게실에 비치했던 보드게임은 잦은 도난으로 현재는 비치가 중단된 상태다.

3년에 걸친 큰 숙제가 마무리된 시점. 손 학예연구사는 잠시 숨을 고르고 시야를 넓혀볼 생각이다.

손 학예연구사는 “그간 게임을 만드는 데 급급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알리고 좋은 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생각해 볼 생각”이라며 “게임이 제작만으로 끝나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이 즐길 방법을 고민해 보겠다”고 밝혔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손은주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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