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소박한 야영이 그립다
[경일춘추]소박한 야영이 그립다
  • 경남일보
  • 승인 2023.09.0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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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참진주요양원 부원장
김상진 참진주요양원 부원장



진주 근교의 글램핑장을 갔다. 야영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러 갔다. 글램핑장을 기웃거려 보니 야외수영장이 보인다. 텐트 안에는 침대, 대형 TV, 에어컨, 샤워부스 등 호텔급 비품들이 있었다. 바비큐 그릴도 보였다. 겉만 텐트고 속은 펜션이었다. 10여 년 전부터 들어선 글램핑장은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급속도로 늘어났다. 몸 만 가면 야영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데다, 환기가 잘되고 식사도 개별텐트 안에서 해결되니 코로나 감염 우려가 적었다. 여행을 못 가면서 답답함을 느끼던 여행족들을 끌어들였고, 귀찮고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젊은 층들이 주요 고객이 됐다.

글램핑장을 나오면서 ‘사치스러운 야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램핑(glamping)’의 의미가 고급스러운 캠핑이라지만 꼰대인 나는 지리산에서 야영하던 생각이 났다. 지금은 취사와 야영 금지로 불가하지만, 1990년 가을까지 만해도 지리산 어느 곳이든 할 수 있었다.

지리산의 대표적 야영지는 세석고원. 철쭉제가 열리는 6월이면 배낭에 버너와 코펠, 침낭과 텐트를 넣고 지리산을 올랐다. 세석고원 아래 약수터에서 길러온 물로 쌀을 씻어 밥을 했다. 석유 버너를 알코올로 데워 펌프질하면 ‘쉭’ 소리와 함께 파란불이 나왔다. 높은 곳이라 코펠 뚜껑에 돌을 얹어도 밥은 설익었다. 김치와 김만 있어도 꿀맛이었다. 백운산과 남해가 보이는 해발 1600m 지리산.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반짝거렸다. 새벽에 일출까지 본다면 ‘3대가 덕을 쌓은 집안’이라는 훈장까지 다는 날이었다. 늘 넉넉한 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 야영문화가 바뀌고 있다. 글램핑은 가족 중심의 여가문화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하지만 야영에 대한 철학은 이어져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야영은 식량을 찾아 이동하던 유목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 들어 심신 수련과 자연 극복을 위한 목적으로 바뀌었다. 고급 장비 속에서 보내다 보면 야영의 목적인 자연과의 교감은 멀어지고 과시문화로 변할 수 있다. 세계적인 야영의 흐름은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안에서 심신의 안정을 찾는 것이다. 몇 년 전 다녀온 남미의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서 만난 야영객들은 최소한의 장비를 이용한 야영을 지속하고 있었다. 우리의 야영문화도 고급 글램핑장에서 벗어나 ‘자연’에 집중하는 형태로 바뀌었으면 한다. 도시 근교 야영장에서 가족들이 직접 텐트를 치고 버너로 밥을 해 먹는 야영을 자주 볼 수 없을까. 편리함보다 자연과 동화된 소박한 야영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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