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우리 빨간 벽돌집
[경일춘추]우리 빨간 벽돌집
  • 경남일보
  • 승인 2023.09.12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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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구 건축사
권명구 건축사


아침 새소리 사이로 ‘윙~윙~’ 하는 모터소리와 어떤 석재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한 번 ‘윙 ~윙’. “김 전무님, 이거 날이 안 들어가는데, 사이즈도 안 맞고…” 대략 4.5m쯤 될까. 높게 설치한 비계 위에서 사장님이 큰소리로 말한다. 30분 째 100㎜ 환기구를 뚫기 위해 씨름 중이다. ‘쑹∼’

“야, 단단하네. 80년대 만든 벽돌은 정말 야무네. 요즈음 벽돌은 안 그래” 호탕한 사장님이 마침내 일을 끝내고 먼지를 둘러 쓴 채 한마디 뱉는다.

내가 사는 집은 붉은 벽돌집이다. 가난했지만 희망이 가득했던 시절, 80년대에 부모님이 지으셨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이 다 모여 살았으면 좋겠다 싶어 3층에는 방 3개, 2층에는 방 1 그렇게 내가 설계했다 아니가?”라고 종종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1층의 높이나 실내의 구성을 건축사와 의논하고 자문을 받으셨으리라 싶다.

어린 시절 집을 짓는 과정을 본 나는 당시 ‘활기가 있고 재미있었다’는 느낌이 남아 있다. 특히 집을 지을 때 파낸 구덩이는 참 깊었다. 기초를 시공할 터파기에 해당되는데, 그렇게 깊었을 리가 없는데 내 기억 속에는 그렇다. 현재의 건축물 기초와 견줘보면 지금도 미스터리다.

요즘 가끔 나를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은 당시 집을 짓는 사람들의 밝았던 표정이다. 계절은 9월이었으리라 싶은데, 너도나도 신나서 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문틀을 현장에서 제작했는데 그 광경이 멋져보였다.

망치와 못, 대패로 ‘뚝딱뚝딱’하면 예쁜 문틀이 만들어졌다. 한층을 올라가서 벽돌사이에 줄눈을 넣고 있는 대여섯 명 의 아주머니들도 힘든 기색 없이 표정이 아주 밝았다.

“사장님, 좋은 집도 짓는데 시원한 거 하나 사 주이소” 하는 정겨운 아주머니들의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요즘 건축 현장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우선은 현장에 있는 기술자의 수가 적다. 대신 편리하고 기능적인 장비가 가득이다. 벽돌의 줄눈작업을 하는 기술자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한다. 공장에서 생산된 성능 좋은 창호와 여러 내 외장재가 풍부하고, 분야별로 분업화가 확연하다.

40년 후 건축사가 된 필자는 그 벽돌집에 누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잠을 청한다. 능수능란하게 문틀을 만들며 웃음을 보여 주셨던 그 목수 아저씨, 입담 좋고 구수한 농을 건네던 아주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그분들의 고마운 마음을 다시한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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