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나는 30년 만에 최윤의 소설 ‘회색 눈사람’(1992)을 읽었다. 1970년대 유신 시대의 암울했던 이념 문제가 민감하게 그려져 있는 이 소설은 1991년 12월 26일 구소련의 해체에 대한 반응으로 읽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은 20세기의 세계를 반쪽으로 나눈 마르크스레닌주의도 결국 실패로 끝났음이 공인된 시점이기도 했다. 나는 구소련 해체라는 엄청난 사건이 이 소설의 창작 동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때의 세계상황을 비추어볼 때 회색 눈사람은 희망의 상징이라기보다 성찰의 상징이었다. 요컨대 이 소설은 세계사적인 격변의 상황 속에서의 중도적인 전망을 제시한 유의미한 작품이었다.
암울한 시대의 얼어붙은 우상인 회색 눈사람. 수많이 녹았지만 아직도 녹지 않은 우상들이 있다. 최근에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오른 정율성과 홍범도에 대한 역사 평가가 그 한 예가 된다. 이런 점에서 회색 눈사람에 대한 역사적 현재성은 지금도 유효하다. 정율성은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에 차례로 소속돼 두 군대의 군가를 적잖이 작곡했다. 지금, 광주에서 혈세 수십억을 들여 기념사업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가 사회주의 혁명의 해방구도 아닌데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다행히 국민의 대부분이 이 기념사업을 철회하기를 바라고 있다.
만약 백선엽 장군의 흉상을 육사 교정에 세우자면, 어떤 반응이 예상될까? 한쪽에선 안 된다면서 길길이 날뛸 것이다. 친공 경력이 있는 독립전투의 영웅은 괜찮고, 친일 경력이 있는 한국전쟁의 영웅은 안 된다? 과연 이것이 형평성이 있는 논리라고 보이나? 홍범도 안장식 당시의 대통령인 문재인은 그를 두고 ‘우리 모두의 영웅’이라고 칭송을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는 반쪽 영웅이다. 정율성도, 맥아더도, 백선엽도 마찬가지다.
이 대목에서 내게도 제안이 있다. 서울의 어느 시민공원에 (기왕에 만들어진) 홍범도 흉상과 백선엽 흉상을 (새로 만들어) 나란히 세우자는 안이다. 친공 경력이 있는 독립전투의 영웅과 친일 경력이 있는 한국전쟁의 영웅을 함께 기리자는 것. 시민들이 두 장군의 모습을 함께 바라보면서 지나간 과거를, 우리 역사 속의 미완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자는 거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마음 도처에 얼어붙은 회색 눈사람이 남아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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