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봉사자의 DNA
[경일춘추]봉사자의 DNA
  • 경남일보
  • 승인 2023.09.1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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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참진주요양원 부원장
 
김상진 참진주요양원 부원장


요양원에 봉사하러 오는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표정이 밝다. 코로나 유행 기간에는 봉사활동이 중단됐다가 최근 들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아직도 어르신들을 밀접 거리에서 만나야 하는 이·미용, 목욕 봉사 등은 못한다. 춤과 노래, 레크레이션 등 공연 봉사가 대부분이다. 봉사자들은 유머와 제스츄어, 언변으로 자신을 망가뜨리며 웃음을 선물한다.

내가 근무하는 요양원에는 거의 매일 자원봉사자들에 의한 공연이 펼쳐진다. ‘논개 예술단’은 이부판 단장과 은퇴한 교육자, 국악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연에 앞서 단원들은 2∼3시간 연습을 한다. 예명이 ‘몽돌’인 단원은 인천서 교사로 재직했었는데 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잃어버렸다가 하루뒤 밭에서 찾았다. 당장 사표를 내고 치매 예방 강사 자격까지 따고 어머니를 돌봤다. 어머니 별세 후, 취미로 배워 온 판소리와 우리 춤으로 봉사에 나섰다. 오래 하다 보니 전국 국악대회에서 굵직한 상을 받는 명창급이 됐다. 고향 선배인 곽정술 단원과 같이 호흡을 맞춘다. ‘몽돌’ 단원의 창작 판소리 한 소절이다.

“8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남자관계가 복잡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경남 주부 노래봉사단 김정태 마술사(73)는 큰 병마를 이긴 뒤 봉사자의 길로 나섰다. 부산 마술학원에서 수백만 원의 강사료를 내고 마술을 배웠다. 마술 장비를 600만원 어치나 갖고 다닌다. 박수를 치면 구부러진 밧줄의 날이 빳빳이 서는 신기한 10여 가지 마술이 그의 장기다.

하모 예술봉사단은 고급 음향 장비를 싣고 온다. 박동연 단장은 장비를 미리 설치한 뒤 공연을 펼치는데 장비만 1000만 원짜리라 한다. 함께 공연하는 ‘품바 마왕’ 최민은 전국의 장터를 도는 진짜 품바다. 옷과 장비를 가득 싣고 전국을 누빈다. 구수한 입담과 노래 솜씨는 내가 본 품바 중 으뜸이다.

경남주부노래봉사단 멤버는 자영업자와 농부들이다. 과수원에서 일하다가 트럭을 끌고 오는 아줌마 농부, 식당을 하는 부부는 브레이크 타임에 달려와 노래를 몇곡 부른다.

이들은 1인 다역을 하므로 공연 중에도 몇 번씩 의상을 갈아입는다. 공연 전에 연습을 하고 정성껏 분장한 뒤 무대에 선다. 관객이 적은 무대라고, 아픈 노인들 앞이라고 대충 때우지 않는다. 봉사자들은 하나같이 “이 나이에 쓸모 있는 인생이라는 보람을 주는 데다, 생활에 활기를 주어 오히려 고맙다” 말한다. 깊은 겸손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 ‘왕의 DNA’는 없어도 ‘봉사자의 DNA’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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