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대통령님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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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3.09.1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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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얼마 전부터 윤석열 대통령에게 굽은 나무를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여러 명이다. 중국 전국시대 최고 명재상인 관중(管仲)이 제나라 군주 환공에게 했다는 바로 그 나무 이야기이다. 먼저 굽은 나무를 깔면, 굽은 나무 다음에 또 굽은 나무를 대야 하기 때문에, 굽은 나무를 깐 다음에는 곧은 나무를 깔 수 없다. 마찬가지로 먼저 곧은 나무를 깔면 곧은 나무 다음에는 또 곧은 나무를 대야 하기 때문에, 곧은 나무를 깐 다음에는 굽은 나무를 깔 수가 없다는 내용이다.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많은 분들이 국정에 바쁘신 대통령에게 나무 이야기를 한 것은 공직사회 인선의 동종교배가 초래할 국정파탄을 걱정해서이다. 2022년에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고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해 인사 검증 권한을 대통령실에서 법무부로 옮겼다. 현재 공직 후보자 추천 책임자는 대통령실 인사기획관과 인사비서관이다. 1차 검증은 법무부이고, 최종 확인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다. 그런데 몇 개월 전 언론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실 추천→법무부 1차 검증→대통령실 2차 검증’의 전 과정을 검찰 출신들이 앉아 있다고 한다. 교차 검증은 아예 힘들다.

우리 역사에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붕당정치의 시작도 3사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이조전랑 쟁탈전에서 비롯됐다. 선조 때에 이조전랑 김효원의 후임 인사문제로 정치권이 시끄러워졌고, 결국 1575년부터 동서분당이 시작되었다. 전랑의 지위는 정5~6품에 불과했지만 권력은 막강했다. 왕권 견제기관이자 청요직인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새로 배속될 사람을 왕에게 추천하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이조 전랑을 자기 파벌에서 앉히기만 하면 청요직을 독점할 수 있어서 계파 독재가 가능했다, 동인과 서인이 죽기 살기로 이조전랑 쟁탈전에 나선 이유다. 물론 예방장치도 있었다. 파벌에 의한 인사를 막고, 인물 위주로 하기 위해 자신의 임기를 마친 전랑이 후임자를 추천할 수 있는 자대권(自代權)이란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3사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이조전랑이란 자리는 독립적일 수가 없었다. 점차 이조전랑은 인사권을 악용해 조정 내 권력서열을 결정했고, 여론도 주도했다. 여론 주도는 곧 조작정치를 뜻한다. 이조전랑의 적폐가 심해지면서 민생은 파탄났다.

반정에 성공한 인조 때에도 인사문제가 심각했던 모양이다. 효종의 장인인 계곡 장유는 ‘계곡집’에 실린 ‘곡목설(曲木說)’이라는 수필에서 인사 검증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대화체로 설명했다. 그의 글에는 장씨 성을 가진 장생이 등장한다. 장씨가 탄식하며 “아, 재목으로 쓸 나무는 대부분 얼른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무의 경우는 내가 세 번이나 보고서도 재목감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니 겉으로 후덕해 보이고 인정 깊은 사람일지라도 어떻게 그 본심을 알 수 있겠는가? 말을 들어보면 그럴 듯 하고 얼굴을 보면 선량해 보이고 세세한 행동까지도 신중히 하므로 우선은 군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큰일이나 중대한 일을 당해서는 그의 본색이 드러나고 만다. 국가가 망하는 원인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사람들 때문이다”고 했다. 기어이 끼리끼리 모인 노론의 일당독재가 나라를 망쳤다. 조선 정치의 실패는 인사권 독점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조전랑이 균형 있는 인사를 천거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진리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대통령님께 말씀드립니다. 요즘 권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진실화해위원회, KBS, MBC 등의 인사문제로 시끄럽습니다. 개인이 개인을 평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공적인 인사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로운 이익을 탐낸 적이 있는지, 정의를 위해 헌신한 적이 있는지를 살피는 인재 검증 시스템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의 인재 시스템을 고쳐 균형을 갖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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