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역사 부인에 맞서 기억의 연대로
[여성칼럼]역사 부인에 맞서 기억의 연대로
  • 경남일보
  • 승인 2023.09.26 14: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얼마 전 서울 남산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는 추모공간인 ‘기억의 터’가 서울시에 의해서 철거됐다. 서울시는 작가 임옥상씨가 성폭력 가해자로 판명되어 그가 만든 조형물을 철거한다고 밝혔다. 이에 여성단체와 많은 시민들은 성급한 철거 전에 임옥상의 성폭력과 일본군‘위안부’ 역사를 모두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는 방안을 공론의 장을 통해 먼저 마련하자고 제안했으나, 서울시의 응답은 강제철거였다.

‘기억의 터’는 아픈 역사를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다짐으로 1만 9754명의 시민들이 마음 모아 서울 남산자락 옛 통감 관저터에 조성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임옥상씨 개인만의 작품이 아니다. 많은 시민들의 염원과 다짐으로 만든 공간이다. 서울시가 발빠르게 철거한 이유는 아마도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는 일련의 모든 것들을 지우고 싶은 세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기억의 터’를 철거한다고 민족의 역사가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 정부는 한미일동맹을 튼튼히 하며 평화보다는 전쟁과 긴장의 축을 높여가면서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도 동조하고,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모든 억압과 착취를 지우고 싶은 모양이다. 독립군 홍범도 장군을 이념 논쟁으로 선을 그으며,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의 역사는 해방 이후 분단된 이후부터 출발인 듯 하다.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이데올로기적 사조 및 담론체계를 ‘역사부인주의’라 하는데 이러한 역사부인주의자들은 불편한 진실을 피하기 위해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거나, 그것은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등의 시각으로 부인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항일투쟁, 그리고 일본군의 성노예로 착취당한 피해자들의 눈물과 정의로운 문제해결 의지는 그 어떤 거짓선동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지워질 수 없다. 일제강점기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려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다.

과거 일본군 ‘위안부’가 어떻게 끌려가고,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물론이고 공공역사의 관점으로 전문적인 학술연구의 장 너머에서 다양한 행위주체에 의해 능동적이고 복합적으로 서술되고 재현되는 역사에 대해서 주목해야 한다. 할머니와 함께 했던 활동가, 그녀들에 대한 기억,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사실들 그 모든 것이 공공의 역사이다.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민중들의 기억이 역사이고 증거인 것이다. 민중이 기억하는 역사는 힘이 있다. 그래서 부단히 지우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는 사람을 자꾸 만들어내고 확대해가야 한다. 공적인 영역에 기억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 실현 방법의 하나이다.

역사부인주의자들은 점점 규모를 확대해가며 매주 진행하는 수요시위에 맞서 집회를 열며 혐오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강한 비난은 ‘위안부’할머니들이 평생 들었던 부정의 말들이 무엇이었는지 체감하게 한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인권을 빼앗고 짓누르는 것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는 그들에게 맞서 우리는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본 우익들과 같은 말을 내뱉는 역사부인주의자들이 권력과 힘을 합쳐 확대하려는 정치를 주시해야 한다. 모든 것이 퇴행하고 있는 지금, 상식적인 사람들이 힘을 모아 연대하며 맞서야 한다.

트라우마의 회복은 악을 이겨 냈다는 착각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며, 악이 전적으로 승리할 수는 없었음을, 그리고 회복을 가능케 하는 사랑이 여전히 세상 속에 존재한다는 희망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한 주디스 허먼의 말처럼, 우리는 사랑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