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충절의 고장, 진주를 생각하다
[기고]충절의 고장, 진주를 생각하다
  • 경남일보
  • 승인 2023.10.0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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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용 진주시의회 부의장
최신용 진주시의회 부의장


제 고장이 아름답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우리 진주는 더욱 아름다운 듯하다. 환하게 뜬 달이 남강에 비치면 월인천강(月印千江)이 말 그대로요, 끝없이 펼쳐진 진양호반의 모습을 바라보면 풍월무변(風月無邊) 그 자체다. 이렇게 아름다운 진주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충절의 고장이 아닐까 한다.

시역(市域)이 확장되기 전 진주의 관문 역할을 하던 석류공원 맞은 쪽 남부산림연구소 정문 화단에는 “충절의 고장 진주 방문을 환영합니다”가 꾸며져 있었다. 그래서 시민이든 방문객이든 그 글귀를 보며 자연히 “진주=충절의 고장”의 등식이 각인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진주가 왜 충절의 고장으로 불리게 됐을까? 그 까닭을 살펴보려면 먼저 충절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충절이란 충성스러운 절개를 뜻하고, 절개는 신념·신의 따위를 굽히지 아니하고 굳게 지키는 꿋꿋한 태도를 말하므로 결국 충절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불사하는 고귀한 정신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를 감안한다면 아무래도 진주 역사 중 가장 큰 사건이었던 임진·정유의 왜란에서 진주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충절이 그 이유가 아닌가 추측된다.

진주는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인재가 거듭난 국중대읍(國中大邑)으로 이름 높았는데, 임진·계사 및 정유의 왜란 때 7만 읍민 모두가 왜적에 항거하다 순절하는 참화로 지역이 거의 초토화됐다. 왜적에게 항복을 하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무엇이 과연 진주 사람들로 하여금 충절을 지키게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불의에 대항하며 충절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던 다음 여러 거인들이 진주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먼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에 빛나는 진주대첩의 주인공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다. 장군은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살신성인의 자세로 진주성 수성에 성공한 후 장렬히 순국해 충절의 표상이 됐다. 또한 1593년 계사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충청병사 황진은 이미 적의 기세가 매우 심대해 패배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참전, 죽음으로써 그 절의를 지켰다. 당시 의병장이던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도 역시 함께 남강에 투신하며 순국했는데 후세 이들을 삼장사(三壯士)라고 칭하며 이들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하동 금남 출신 정기룡 장군은 당시 육전(陸戰)에서 60전 60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운 명장인데, 장군 역시 진주와 인연이 깊다. 먼저 장군은 제1차 진주성 전투 때 김시민 장군을 측면에서 도와 진주대첩에 일조한 바 있으며, 특히 장군의 첫 번째 부인인 강씨는 계사년 진주성 전투 때 절개를 지키며 자결, 몸소 충절을 보여주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임진왜란 당시 수곡면 원계리에서 수군을 조련했을 뿐만 아니라 백의종군 후 삼도수군통제사의 직책을 다시 받은 곳 역시 진주 수곡 손경례의 집이었으니 진주와의 인연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농포 정문부 장군도 임진왜란 당시 주로 함경도 등 북관(北關)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셨는데, 장군이 말년에 후손들에게 이르길 진주에 살라고 해 현재 충의사(忠毅祠)가 진주에 있는 등 진주와 연고를 맺고 있다. 이렇듯 임진왜란 당시 국운을 좌우했던 수많은 충절지사가 바로 진주를 배경으로 활동했고 자연히 그 정신이 진주에 녹아들어 충절의 고장 진주가 된 것이 아닐까? 뒤에 진주에서 전개된 임술농민운동, 동학혁명, 형평운동, 항일활동 모두가 어쩌면 충절이 밑바탕에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오늘 다시 충절의 고장 진주를 생각하며, 그 정신을 다시 숭앙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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