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46]양산 구만계곡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46]양산 구만계곡길
  • 경남일보
  • 승인 2023.10.0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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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바위, 파란 하늘, 뭉게구름…여기가 바로 '구만동천'
 
구름 한 다발을 이고 선 구만산.
◇피란처가 피서지로 바뀐 구만계곡

막바지 여름 무더위를 떨쳐버리기 위해 진주산오름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구만산 계곡 트레킹(걷기 여행)을 떠났다. 구만산 산행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여름 장마 직후 계곡의 수량이 너무 많아 계곡 길을 걸을 수 없어 능선을 타고 구만산 정상을 산행하고 온 적이 있고, 두 번째는 가뭄이 심했을 때 갔는데 수량이 적어 마른 계곡을 트레킹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비가 온 지 3~4일 정도 지난 뒤라 트레킹하기에 딱 좋은 시기란 생각이 들어 다시 계곡 트레킹에 도전했다. 진주에서 두 시간 정도 걸려 구만산 입구에 도착했다. 구만산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때 9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피란해 전란을 무사히 피하게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300m 정도 올라가자, 자그마한 암자인 구만암이 있었다. 구만암에서 직진하면 통수골과 구만폭포로 가는 계곡트레킹 길이고, 오른쪽 오르막길로 올라가면 산 능선을 타고 구만산 정상을 찍고 구만폭포로 돌아오는 산행길이다. 필자는 구만암-악수탕-통수골-구만폭포-구만산 정상-구만폭포-구만암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트레킹 길을 택한 필자는 구만계곡 초입에서 깜짝 놀랐다. 구만 명의 주민들이 피란을 한 곳이라고 하기엔 계곡 입구가 너무 좁고 마치 계곡이 막혀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길옆 가파른 산기슭엔 토종꿀을 채취하기 위해 여러 개의 벌통을 설치해 놓았다. 벌통 앞에 가까이 다가가자 토종벌들이 벌통 근처에서 다급하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벌통 입구에 덩치 큰 장수말벌 한 놈이 지키고 있었다. 필자 역시 겁을 집어먹고 손에 든 막대기를 팽개치고 줄행랑을 놓았다.

◇바위가 물소리를 연주하는 통수골

보통 둘레길은 길섶에 풀들과 나무들이 탐방객들을 반긴다. 그런데 구만계곡길은 풀과 나무의 존재감을 압도하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다이아몬드바위, 벼락덤이, 아들바위, 상여바위, 병풍바위 등 수많은 바위가 있다는 인터넷 소개 글을 읽고 초입부터 유심히 바위를 살피며 걸었다. 바위들에 대한 안내판이 없어 무척 아쉬웠다.

계곡을 따라 나 있는 길을 들어서자 계곡 바닥도 온통 바위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매미 소리나 새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물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계곡의 경사와 바위의 크기에 따라 귀에 닿는 물소리는 달랐다. 평평한 물줄기에선 고요한 연주 소리가 들렸고 가파른 계곡과 큰 바위들이 연주하는 물소리는 정점에 이른 오케스트라와 같은 음률이 들렸다.

바위가 연주하는 물소리에 취해 한참을 걸어가니 나무계단 중간쯤 가늘고 긴 물줄기로 떨어지는 약수탕이 있었다.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약수탕이라 부른다고 하다. 약수탕에서 좌측 기슭으로 가면 인공동굴인 구만굴이 있다. 2021년 6월 한 탐방객이 이곳에서 점프 샷을 하다 중심을 잃으면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은 적이 있다. 그날 이후 사고 예방을 위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3년 전에 가 봤던 구만굴은 두 개의 굴이 서로 이어져 있는데 구들장과 부뚜막이 있고 그 앞엔 제법 널찍한 마당도 있었다. 부뚜막에 있는 무쇠솥은 낡아서 밑이 뚫려 있었다. 한편 굴속에는 땅 밑을 파서 음식을 보관했던 흔적도 남아 있었다. 누가 언제 구만굴을 팠으며 누가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자연인이나 수행 도인이 기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건너편 능선길에서 구만굴을 바라봤을 때, 동굴이 마치 두 개의 콧구멍처럼 뚫려 있는 모습이 무척 이색적이었다.

약수탕부터 구만폭포까지의 1.3㎞ 골짜기를 통수골 또는 구만동천(九萬洞天)이라 부르는데, 그만큼 인간이 살기에 이상적인 곳이란 의미일 것이다. 깊이 들어갈수록 물소리가 그윽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야 하는 길이 여러 군데나 있었다. 어떤 곳은 물이 불어나 그냥 건널 수가 없어 필자 일행이 계곡 바닥에 큰 징검돌을 놓아 건너기도 했다. 다섯 차례나 계곡을 가로질러야 했다. 탐방객이 아니라 계곡 길 보수(補修)팀이 된 느낌이 들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곳에도 천국이 존재한다

돌너덜길을 지나 계곡물 소리가 정점에 이른 곳이 구만폭포였다. 떨어지는 물소리가 퉁소 소리를 낸다 해서 퉁소 폭포라고도 하는 구만폭포, 양옆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 폭포수를 호위하고 있었다. 42m 높이의 폭포도 장관이었지만 폭포수 소리가 사람을 압도했다. 금세 등줄기엔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더위가 접근하지 못하는 시원한 천국이란 의미로 이곳을 구만동천이라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국과도 같은 구만폭포를 두고 폭포 옆으로 난 가파른 나무 계단을 따라 구만산 정상으로 향했다. 한참 계단을 올라가서 건너편 구만산 쪽을 바라보는 순간,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산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수직으로 깎아지른 바위와 산 위 파란 하늘에 뜬 뭉게구름을 보니 신선들이 살만한 곳이라 여겨 구만동천이라 명명한 것 같았다. 절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쉬다 보니 버스 출발 시각을 놓칠 것 같아 구만산 정상 산행을 포기하고 되돌아왔다. 길섶 서낭당에 선 장승의 가슴에 새겨놓은 ‘화향백리 인향만리(花香百里 人香萬里)’,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는 뜻을 지닌 말이 물소리와 함께 필자의 마음속에 들어와 앉았다.

계곡 트레킹의 정점을 찍기 위해 옷을 입은 채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바위들이 연주해 주는 물소리를 들으며 물멍과 소리멍에 빠진 필자는 물길을 따라 이미 천국으로 가고 있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곳에도 천국이 존재했다.



박종현 시인·멀구슬문학회 대표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탐방객들.
구만굴 무쇠솥.
구만산 능선에서 바라본 구만굴.
구만산 초입에 있는 구만암.
구만산에서 내려다본 산내들.
장승과 돌무더기 서낭당.
바위 위에 자리잡은 토종벌통.
물소리를 연주하고 있는 바위들.
암벽이 절경인 구만산.
돌탑 너머로 우뚝 솟은 구만산 암봉.
계곡을 따라 나 있는 나무계단.
구만폭포 물줄기에 더위를 식히는 탐방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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