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야당의 ‘수박’ 소란
[천왕봉] 야당의 ‘수박’ 소란
  • 경남일보
  • 승인 2023.10.0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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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관도(官渡) 대전에서 대승을 거둔 뒤 조조는 패퇴한 원소의 본진을 뒤지다가 서찰 뭉치를 발견했다. 그동안 원소 쪽과 내통한 자신의 휘하 장졸들로부터 받은 세작질 서찰이었다. 주위에서는 ‘발신자를 확인하여 모조리 죽여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조조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소 세력이 강성할 때 나도 마음 흔들릴 경우가 있었더니라.” 그러고는 편지 묶음을 미련없이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엄명을 내렸다. “이후론 이 문제를 그 누구도 입 밖에 내지 말라. 엄벌하리라.” 너그러움일까 교묘한 통수 기법일까. 개인적으론 조조의 캐릭터를 가장 인상깊게 보여준 에피소드 중의 하나로 본다.

▶소설은 ‘실로 조조 일생을 통해 가장 빛나는 부분을 보고 있다’고 써 놓았다. 이 문장은 정사(正史)의 기록인지 연의(演義)의 지문인지, 아니면 평역자(이문열)가 삽입한 평설인지 모르지만, 과연 조조 인생을 통틀어 찾아보기 힘든 정신적 성취의 광채다. 그저 승자의 관용으로 돌려버리기엔 너무도 휘황한 인간의 빛.

▶이재명 대표 영장기각 후 민주당이 시끌시끌하다. 체포안 표결서 가결표를 던진 표리부동의 ‘수박’을 찾아 처벌하라는 소리가 요란하다. 의원과 열성 지지집단이 한결같고 다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대표는 묵언 중이다. 나중에 조조식 여유로 멋진 폼 한번 잡을 건지, 강성 지지자들 뜻이 옳다는 건지 그 침묵의 속내를 알 수 없다. 부질없는 주문일지 모르지만 설령 가결표가 죄일지라도 조조가 서찰 뭉치에서 보인 여유를 보였으면 한다. 정치 품격을 바라는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다. 정재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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