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배려 실천은 혐오 표현을 사라지게 하는 힘
[경일포럼]배려 실천은 혐오 표현을 사라지게 하는 힘
  • 경남일보
  • 승인 2023.10.0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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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김성규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학교에서 학생들 간에 ‘개근 거지’라는 ‘혐오 표현’이 사용되다가 코로나19로 가족 동반 해외여행, 체험활동이 제한되면서 그 신조어가 사라졌었다. 요즘 코로나가 완화돼 여행이 가능하니 다시 이 말이 확산되고 있다.

개근 거지는 개근을 ‘성실, 근면, 건강’의 표상(상징)으로 알고 있는 세대에게는 충격적인 말이다. 학기 중 교외체험학습(이하 체험학습)을 가지 못하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뜻하는 신조어이다. 체험학습은 가족 동반 여행, 친인척 방문 답사 등 다양한 학습 형태로, 실시 전 신청서를 제출해 학교장 승인을 받으면 출석이 인정되는 것으로 한해 15~20일 사용 가능하다. 가정 형편상 체험학습을 가지 못하는 아이일 경우 매일 학교 출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아이들을 놀리면서 낙인찍는 말이 바로 개근 거지다. 여행 갈 형편이 안되니 결석할 이유가 없어 개근했다고 비아냥거리는 표현이다.

과거 ‘성실함의 증표’ 였던 개근이 이제는 아이들을 비꼬는 혐오 표현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도 우려하고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초등학생이 개근 거지라는 말을 듣게 되면 아동기부터 계층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돼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며 “특히 어릴 때는 아직 정체성이 확립돼 있지 않은 데다 하층민이라는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여 위화감·자괴감이 커질 수 있고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학부모의 의식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들의 혐오 표현 사용은 부모세대의 특권 의식이 아이들에게 반영된 결과라고 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 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 행동이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말이다. 아이는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사고할 능력이 없어 부모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일 뿐 전후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자녀에게 있어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이와 관련해 교훈을 준 대표적인 책, 로알드 달이 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소개한다. 사장인 윌리 웡카가 자신의 공장에서 만든 초콜릿 제품 포장지 속에 있는 황금빛 초대장을 찾은 5명 아이를 자신의 공장으로 초대, 견학 후 평생 먹을 초콜릿과 사탕을 주겠다고 광고했다. 사장은 그 중 마지막까지 탈락하지 않은 1명을 공장 후계자로 삼겠다고 자신만의 목표를 세운다. 결국 주인공인 찰리 버켓(이하 찰리) 외 다른 4명의 아이는 잘못된 부모 아래 자라 남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 견학 중 사라지게 된다. 사장은 마지막 남은 찰리에게 “네가 이길 줄 알았다”는 말을 해준다. 5명의 아이를 만났을 때 바르게 자랐는지 아닌지를 바로 알았다는 것이다. 초대장 발견부터 공장 견학 중 아이가 탈락되기까지 전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바르지 못한 행동을 우리는 자세히 보았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을 자녀와 함께 읽고 교훈으로 삼으면 좋겠다.

아이의 올바른 모습을 기대하고 부모가 먼저 보여주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부단한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힘들다. 혐오 표현은 법을 통해서라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기준과 정도가 애매하여 처벌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해 점차적으로 적용, 혐오 표현을 쓰지 않도록 유도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쉽게 내뱉은 말이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생활 속에서 배려를 잘 실천해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이 가을처럼 풍성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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