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김명시’ 이달 중 발간 예정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 수록
사료 기반·지역 중심 내용 의미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 수록
사료 기반·지역 중심 내용 의미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렸던 김명시(1907∼1949, 마산 출생)의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을 담은 책이 이달 중 발간된다.
창원지역 민간단체인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이달 말 김명시 장군의 항일독립활동 등을 정리한 도서 ‘김명시’(저자 이춘)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10일 밝혔다. 이 책의 부제는 ‘묻힐 뻔한 여성 항일독립영웅’이며, 400쪽 분량으로 김명시 장군이 마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기와 항일무장투쟁 및 투옥기간, 해방후 활동, 잠적기 등을 폭넓게 다룬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지난해 8월 김명시 장군이 당시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자 곧바로 책 집필에 착수했다.
이 단체는 김명시 장군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 2019년부터 수 차례 정부에 독립유공자 등록을 신청한 바 있다.
저자 이씨는 이 단체의 운영위원이다.
열린사회희망연대 관계자는 “김명시 장군을 주제로 한 책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 책은 사료에 기반해 쓰였고 지역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2019년에는 김명시 장군을 주제로 한 장편소설 ‘명시’(저자 안재성)가 발간된 바 있다. 창원지역에 있는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은 2021년 창원시 양성평등기금에서 680만원(자부담 별도)을 지원받아 여고생들과 함께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그림책을 제작하기도 했다.
마산에서 태어난 김명시 장군은 19살이던 1925년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가 1927년 상하이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일제의 만주침략이 다가오던 1930년에는 하얼빈 일본영사관 공격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32년에는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혹독한 심문을 받고 7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에는 중국으로 망명해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갔다. 1942년 조선의용군 여성부대를 지휘하면서 ‘여장군’ 호칭을 얻게 됐다. 한 손에는 총을, 다른 손에는 확성기를 들고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모습에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렸다. 해방 이후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극렬한 이념 갈등속에 부평경찰서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은수기자 eunsu@gnnews.co.kr
창원지역 민간단체인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이달 말 김명시 장군의 항일독립활동 등을 정리한 도서 ‘김명시’(저자 이춘)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10일 밝혔다. 이 책의 부제는 ‘묻힐 뻔한 여성 항일독립영웅’이며, 400쪽 분량으로 김명시 장군이 마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기와 항일무장투쟁 및 투옥기간, 해방후 활동, 잠적기 등을 폭넓게 다룬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지난해 8월 김명시 장군이 당시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자 곧바로 책 집필에 착수했다.
이 단체는 김명시 장군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 2019년부터 수 차례 정부에 독립유공자 등록을 신청한 바 있다.
저자 이씨는 이 단체의 운영위원이다.
열린사회희망연대 관계자는 “김명시 장군을 주제로 한 책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 책은 사료에 기반해 쓰였고 지역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2019년에는 김명시 장군을 주제로 한 장편소설 ‘명시’(저자 안재성)가 발간된 바 있다. 창원지역에 있는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은 2021년 창원시 양성평등기금에서 680만원(자부담 별도)을 지원받아 여고생들과 함께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그림책을 제작하기도 했다.
마산에서 태어난 김명시 장군은 19살이던 1925년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가 1927년 상하이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일제의 만주침략이 다가오던 1930년에는 하얼빈 일본영사관 공격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32년에는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혹독한 심문을 받고 7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에는 중국으로 망명해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갔다. 1942년 조선의용군 여성부대를 지휘하면서 ‘여장군’ 호칭을 얻게 됐다. 한 손에는 총을, 다른 손에는 확성기를 들고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모습에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렸다. 해방 이후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극렬한 이념 갈등속에 부평경찰서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은수기자 eunsu@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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